2012년 5월 31일 목요일

[최장집 칼럼]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1)

  
1.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최고의 동료로 만나 지금은 10년의 나이 터울에도 불구하고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형제처럼 지내는 백선익 선생님. 어쩌다 나는 지금 핀란드에서, 백 선생님은 필리핀에서 각각 떨어져 유학하는 처지가 되었다. 곧 필리핀국립대학 아시아학 석사과정 입학을 앞두고 있는 선생님과 종종 통화하는 것이 내게는 큰 위로와 용기가 된다. 그런데 지난 4월 초순 경 어느 날 아침에 백 선생님과 인터넷 전화로 통화하다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치며 동의한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최장집 칼럼]이 정말 훌륭하다는 것!
 
그 때 우리는 총선을 앞둔 한국의 정치적 풍경(특히야구의 무사만루 찬스에서 병살타를 친 뒤 투아웃 상태의 위기에 빠진 모습에 비유되던 민주당 한명숙호의 무기력과 이른바 김용민 막말 파문 논쟁)에 대해 우울한 소회를 나누고 있었는데,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백 선생님이 그래도 요즘 최장집 선생 칼럼이 참 좋데.”하고 운을 떼는 것이었다. 나도 재빨리 그 말을 받아, “, 그렇지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 최장집 선생 칼럼을 읽고 너무 좋아 그 동안 연재된 칼럼을 한 달음에 모두 읽었어요!”라고 목청을 높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내가 저 두 사람 또 의기투합 하는구나’, 그런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계속 소리를 높이며 최장집 선생 글의 미덕을 부르짖었다.
 
그 뒤에도 지금까지 격주 정도에 한 번 꼴로 연재되는 이 칼럼을 나는 모두 열독했다. 내가 보기에 최장집 선생의 이번 칼럼 연재는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여러 측면의 성취와 모멘텀을 제공한다선생의 칼럼을 읽으며 갖게 된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2.
우선, 선생의 칼럼들은 그 자체로 뛰어난 정치평론이자 사회비평이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제도화된 정당 정치의 성숙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연구에 오랜 동안 천착해왔던 정치학자이다. 이러한 그의 이론적, 실천적 지향은 칼럼의 선명한 지향성으로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이 작업을 추상적인 이론적 명제와 주장으로 전개하는 대신, 우리 사회의 가장 실질적인 문제이면서도 정치적 공공 영역에서 거의 대표되지 않는 이슈들을 통해 아주 구체성있게 풀어간다.
 
장위동 봉제공장의 얼굴없는 생산자들로부터 시작해,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감춰진 상처”, “현대차와 민주적 노사관계”, “다시, 변화의 중심에 선 젊은 세대”, “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복지를 생각하다”, “공덕동 재래시장에서”, “농업·농민을 다시 생각한다”, “‘청년 유니온한국 노동운동의 희망”, “외국인 노동자,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그리고 최근의 누가 신용불량자를 만드나누가 신용불량자를 방치하나에 이르기까지, 제목만 일별해보아도 그의 관심이 향하고 있는 장소가 어딘지 생생히 전달된다.
 
더욱이, 이 칼럼들을 그는 책상에서 쓰지 않고 현장을 발로 누비며 썼다. 칼럼이라기보다 심층 르포에 가까운 한 편 한 편의 글에는 현장에서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육성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어느덧 정년을 지나 칠순이 다 된 원로 정치학자가 전국의 현장을 누비며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그러나 정말 실제적인 문제들을 면밀히 취재하고,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 시민권을 얻지 못한 우리 시대의 민중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그려내는 이 수고로운 작업 앞에서 나는 깜짝 놀랐고,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칼럼들은 비단 뛰어난 정치평론의 수준에만 머물지 않는다. 매 편의 글이 사안의 정곡을 찌르면서, 특히 민주화된 정부-의회와 정당과 정치인들이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며, 지금껏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가를 정확히 지적한다. 좋은 정치평론은, 그러므로, 좋은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와 실천(praxis)의 차원으로 연결된다. 그의 글들은 현재 한국의 민주적 의사결정 제도와 그 중심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걸고 치열하게 수행해야 할 기본적 임무와 역할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그리고 이는 10년의 집권 경험을 지니고 있으면서 현재 야권을 대표하는 민주당을 비켜가지 않으며, 나아가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반성의 촉구로 이어진다.

경향신문에 연재되는 [최장집 칼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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