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0일 금요일

2016년 4월 16일, 잊지 않기 위하여


 
1.
 
안녕하세요? 쓰고 보니, 습관적으로 나온 인사말이군요. 정정합니다. 다들 어찌 사시는지요? 물론 안녕하지 못하시리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핀란드에 나와 있는 저도 통 안녕하질 못합니다세월호 참사 이후 여태 마음이 괴롭고 우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슬픔과 분노와 무기력이 번갈아 찾아와 사람을 괴롭혀 참 힘듭니다. 무엇보다 가슴 깊은 곳에 큰 화가 나 있는 것 같습니다그럭저럭 연구실을 나가고 인터뷰를 다니며 일상을 영위하고 있습니다만, 삶의 에너지가 점점 말라가는 느낌입니다.
 
그러다보니 침묵이 길었습니다. 블로그도 페이스북도 한 동안 쳐다보기조차 싫어졌습니다. 교묘한 말들과 용서할 수 없는 망언들이 판을 치는 한국의 언론 풍토에 한 마디도 더 얹고 싶지 않기도 했거니와,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기막힌 사건을 대하고 보니 그냥 말이 끊어진 모양입니다. 사고 직후 몇몇 핀란드 동료들이 건네는 위로 인사에도 저 자신이 먼저 참담하고 부끄러워 금방 대화를 피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먼 나라에서 누구에게 속 시원히 말도 못하고, 그저 혼자서 저 또한 세월호 트라우마를 앓고 있었습니다.

 
 
2.
  
탐욕에 눈 먼 자들이 공동체의 키를 조종하고, 그러다 대형사고가 나도 철저하게 무책임한 행동으로 일관하고, 상상을 초월하게 무능한 정부는 진실을 감춘 채 언론을 통제하는 데는 저리도 능하고, 정치인들과 지도층이란 자들의 망언이 끊이질 않고, 그런데도 다가오는 선거에서 저들은 자기들이 다시 권력을 쥐어야겠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그 사이로 하나둘 떠오르는 공모와 조작과 통제의 사악한 의혹들... 이토록 철저히 망가진, 그럼에도 아직 더 망가질 구석이 많아 보이는 이 나라가 정녕 내가 속한 리퍼블릭이란 말입니까?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이미 언론과 지식인들이 많은 진단과 처방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급하게 이 사건을 규정하기보다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조사해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유가족 대책위원회의 요구와 입장을 명확히 지지합니다. 지금처럼 망가진 한국에서라면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난데없이 불거져 나온 국정원 개입 의혹이 말 그대로 한 점 의혹없이 밝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 갈 데까지 가보자’, 금수원의 구원파가 내걸었다는 현수막의 문구도 결코 단순한 비유와 상징이 아닐 것만 같습니다.
 
무분별한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의 폐해, 정부 민영화와 관피아현상이 야기하는 문제점, 박근혜 정부의 언론 통제와 언론사들의 순응 및 취재윤리 실종, 계속되는 안전사고와 위험사회 증후군 등도 반드시 짚고 바로잡아야할 중요한 문제들이나, 세월호 참사가 사고였는지 사건이었는지 여부는 그 모든 쟁점을 뛰어넘어 최우선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한데 얽혀 긴밀하게 연결된 사건이겠지만요.)
 
그러나 과연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국회 특위 구성이 우여곡절 끝에 합의되었지만 지난 국정원 특위처럼 새누리당의 물타기작전과 증인과 조사대상기관들의 사보타지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해보입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르고, 달라야 합니다. 300명이 넘는 무고한 희생자들이 눈을 채 감지 못하고 있고, 선원들과 선주의 책임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책임이 엄중하게 저들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세월호 사건과 희생된 우리 아이들을 결코 잊지 말아달라는 유가족 대변인의 호소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까닭입니다. 늦었지만 저 또한 스스로 다짐합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3.
  
지난 40여 일간 긴 번민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계속 붙잡고 있던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핀란드 유학길에 오른 지 어느새 2년 반이 흘러갔습니다. 갓 여섯 살이었던 선재는 지난 해 예비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오늘 핀란드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마쳤습니다. 삼십대 후반이었던 저는 40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힘들게 핀란드어를 공부하고 연구계획을 궤도에 올려놓은 뒤 이번 학기 한참 달려가고 있지만, 이 머나먼 나라 핀란드에서 지금 내가 하는 공부가 도대체 한국 사회에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갑자기 큰 회의를 느꼈습니다. 너무나 동떨어진 정치사회의 수준을 앞에 놓고, 짐짓 21세기 핀란드 의회의 개혁과 민주적 혁신을 논하는 것이 참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대한 건강한 자부심, 그 최소한의 근거마저 모두 바닷물 속으로 수장된 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기성세대의 나이가 되어버렸는데,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책임에서 나 또한 피해갈 수 없다는 자책에 또 괴로웠습니다.
 
고민 끝에 제가 도달한 한 가지 결심은 이것입니다. 앞으로 무너진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가꾸는데 기여하겠다고. 그것이 무엇이든, 제가 헌신할 분야와 일을 찾아 10, 20년 끝까지 책임과 역량을 다하겠다고. 무엇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도록 사회와 교육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근원적인 성찰과 혁신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고 연대하겠다고.
 
 
4.
 
자식을 잃은 슬픔과 분노를 이겨내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피눈물나는 노력을 하고 계신 유가족 분들께 큰 절을 올립니다. 거리에서, 해외에서 동료 시민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 밤마다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모든 시민들께도 마음을 보탭니다. 세월호 사건과 희생된 분들의 넋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