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2일 수요일

[기자협회보 칼럼] 대처, 이코노미스트, 북유럽 모델

잘 지내시죠? 핀란드에도 다시 봄이, 아니 여름이 찾아왔네요. 해가 아주 길어졌고, 한밤 중에도 푸르스름한 여명이 머물러 있어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참 아름답습니다. 나무와 꽃과 풀들은 어찌나 빨리 잎을 돋우고 키를 늘리는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갈 때마다 놀랍니다. 한철 장사하는 사람의 분주한 심사를 닮은 듯도 해서 혼자 웃습니다. 긴 겨울 끝에 만난 여름 햇살을 최대한 누리려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호숫가와 잔디밭, 맥주펍의 야외석까지 햇빛 드는 곳은 어디든 웃옷을 훌훌 벗고 자유와 평화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네요. 어쩌면 이 또한 자연의 일이구나 싶습니다.

지난 2월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이 인연이 되어 <한국기자협회보> '글로벌리포트' 란에 칼럼을 쓰게 됐습니다. 북유럽 관련 이슈와 현황을 소재로 해서 6주에 한 번 꼴로 글을 쓸 예정입니다. 오늘 첫 칼럼이 나갔네요. 이번 글은 최근 있었던 대처의 죽음과 <이코노미스트> 북유럽 특집호가 던지는 시대적 함의를 논한 것입니다. 사건 모두 지난 세대를 지배했던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북유럽 연재를 시작하는 칼럼의 소재로서도 좋은 출발점을 제공하는 것 같아 글로 써보았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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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이코노미스트, 북유럽 모델


[글로벌 리포트 | 북유럽]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연구원
2013년 05월 22일 (수) 15:29:15

2013년 4월8일, 영국의 전 총리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사망했다. 정치가 대처의 삶과 행적에 대한 세계 언론의 다양한 평가가 쏟아졌다. 특히 영국 사회는 이를 둘러싸고 여론이 심각하게 분열된 양상이다. 영국의 경제를 재건하고 국제적 위상을 제고한 인물이라는 주류 언론의 평가에 대해 복지국가와 노조를 해체하고 극단적 시장주의 정책을 펼쳐 결국 오늘의 심각한 불평등과 위기를 불러왔다는 평가가 맞섰다. 역사의 공정한 평가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터이다. 그러나 레이건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주창했던 대처의 죽음과 이를 둘러싼 영국의 분열 현상은 그 자체로 지난 한 세대의 패러다임이 끝났음을 알리는 강력한 상징처럼 느껴진다.

지난 2월 발간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특집호는 이미 그 전령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북유럽 나라들:다음 슈퍼모델”(Nordic Countries:The next supermodel)이라는 제하의 이 특집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thinking the unthinkable)” 창조력의 중심이 30년 전 대처의 영국에서 오늘의 스웨덴으로 옮겨졌다고 선언한다. 잡지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시장 경쟁력부터 사회적 건강과 행복 지수까지 두루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고 있으며, 나아가 투명성과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경쟁 자본주의와 ‘큰 국가’의 장점을 결합해 좌우를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잡지에 따르면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관대했던 복지국가 시스템을 개혁하고 사적 시장의 원리를 복지 서비스에도 일부 도입해 경쟁력과 사회통합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덴마크는 가장 유연한 노동 시장과 개방적 무역 정책을 갖고 있으면서도 높은 고용 안정성과 복지 수준을 유지한다.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이다. 핀란드는 신뢰와 안정에 기초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교육 시스템을 일구었다. 이 나라는 노키아 신화와 ‘앵그리버드’의 로비오(Rovio)로 이어지는 혁신기술 경제의 모델이기도 하다.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로 부국이 된 노르웨이는 전통적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고수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에 가까운 노르웨이를 흥미롭게도 최근 중국이 모델로 삼고 있다.

물론 오랫동안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적 사회경제 관점을 옹호해온 잡지답게 이번 특집호도 최근 북유럽 국가들이 연금과 복지 수당을 개혁하고, 교육과 의료 등에 일부 시장 요소를 도입한 사례를 중점 부각한다. 평등과 성장이 함께 가능한 북유럽 경제 모델의 바탕에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합의와 여전히 강력한 노동운동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의 비판적 정치평론지 ‘디센트 (Dissent)’의 온라인 비평에서 죠셉 슈와르츠(Joseph M. Schwarts)가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처의 죽음이 상징하듯이 이번 ‘이코노미스트’ 특집호는 탈규제, 민영화,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 노조 탄압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이 한 시대를 지배했던 패러다임으로서 이념적 대의와 실효를 잃었음을 웅변하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나아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진화된 보편적 복지국가와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바탕으로 여러 방면에서 가장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는 북유럽 국가들의 잠재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교육, 디자인 등 ‘북유럽 모델’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뜨겁다. 그러나 어떤 모델이든 고유한 배경과 맥락, 역사적 형성과 변천 과정이 있다. 깊은 성찰과 오랜 실천 없이 북유럽의 성취를 이룰 길은 없다. 특히 지금처럼 ‘갑의 횡포’가 만연한 한국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그냥 내버려둔 채 북유럽 따라잡기가 도대체 가능할까?

‘이코노미스트’의 돌연한 북유럽 찬가와 대처의 죽음. 현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흐름을 지켜보면서 북유럽 사회에 대한 우리의 논의가 한 단계 진화하길 기대한다.

[한국기자협회보 원문 링크]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