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3일 월요일

다시 시작하는 날

2012년 8월 13일(월). 선재가 드디어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집 근처 수영장과 고등학교를 지나, 공원 사이로 난 숲길을 천천히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Kissanmma Esikoulu(끼싼마 예비학교)에 오늘 아침 첫 등교. 이 날은 예비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2012-2013 학사 일정이 시작되는 날이라,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도 오랜 만에 다시 등교하는 어린 학생들로 북적였다. 선재도 기대감이 있는 듯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밝은 얼굴로 걸어간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뜻하다.

선재의 예비학교는 Kissanmma Koulu에 속해 있다. 이 학교는 우리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이 통합돼 있는 9년제 학교라 학교 운동장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등교해 있었다. 부모랑 같이, 또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온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주차하는 아침 교정의 풍경, 참 인상적이다. 핀란드가 아이들을 키우기에 얼마나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인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선재는 교실로 들어가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겉옷과 신발을 벗고는 친구들 속으로 곧 섞여 들어간다. 다행히 5월부터 해온 축구 클럽의 친구 하나가 같은 반이고, 다른 한 명의 여자 친구도 같은 예비학교를 다니게 됐다. 담임 교사 1명과 보조 교사 1명이 한 반을 맡는데, 칠판에 써진 이름을 보니 선재의 반에는 14명의 어린이가 함께 다닐 모양이다. 선재는 학교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교육비는 소득 구간이 특별히 높지 않은 한 무료이고, 우리 가족도 '당연히' 이 범주에 들어간다. 또, 점심과 오후 간식이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되는데, 일찍 등교하는 어린이는 아침 식사도 제공된다.

선생님과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를 돌아 나오는데 가슴이 묘하게 애틋하다.  실로 오랜만에 낮 동안의 자유를 되찾은 아내는 왠지 조금 허전한 모양이다. 둘이 걷는 길 주변의 나무와 풀숲에서 늦여름의 향기가 났다. 나는 다시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해 독서와 핀란드어 공부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 대학은 아직 방학 기간이지만 선재의 예비학교 입학과 더불어 나도 새로운 1년의 사이클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마침 오늘 대학 사무소에서 '계약서'(!)를 쓰러 오라는 메일이 왔다. 내일은 서류를 갖춰 이번 9월부터 향후 4년간의 연구에 대한 고용 계약서(employment contract)를 작성하고, 신학기 학생 등록 절차도 마쳐야겠다. 그동안 계약서가 나올 때까지 보류됐던 핀란드 사회보장 사무소(Kela)에 자격 신청도 새로 하고, 체류 자격과 기간 변경을 위해 곧 땀뻬레 시경찰청 이민서비스 창구에도 온 가족이 방문해야 한다. 핀란드에 도착한 지 만 9개월째로 접어드는 때, 이제 모든 것을 다시 셋팅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셈.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다시 새로운 여정에 오를 것을 다짐한다.

2012년 8월 9일 목요일

뚜르꾸(Turku)/오보(Åbo) 여행기 - 3. 여행의 성찰, 여행의 지혜


아오는 기차 안의 독서와 사색. 짧고도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선재는 잠이 들고, 나는 해 저무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집에서 가져간 버르란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Bertland Russell, The Conquest of Happiness, Routledge, 2009)을 꺼내 한 챕터를 읽었다. 여행을 갈무리하기 참 좋은 글. 그의 통찰력있는 문장들이 숨을 고르게 한다. 줄을 그으며 읽은 몇 문장.
 
“Cynicism... results from the combination of comfort with powerlessness. Powerlessness makes people feel that nothing is worth doing, and comfort makes the painfulness of this feeling just endurable.”(p.103)
 
“The pleasure of work is open to anyone who can develop some specialised skill, provided that he can get satisfaction from the exercise of his skill without demanding universal applause.”(p.104)
 
“Companionship and cooperation are essential elements in the happiness of the average man, and these are to be obtained in industry far more fully than in agriculture.”(p.106)
 
“This is a complete mistake; any pleasure that does no harm to other people is to be valued. For my part, I collect rivers: I derive pleasure from having gone down the Volga and up the Yangtse, and regret very much having never seen the Amazon or the Orinoco.”(p.107)
 
“Fundamental happiness depends more than anything else upon what may be called a friendly interest in persons and things.”(p.107)
 
“But all this must be genuine; it must not spring from an idea of self-sacrifice inspired by a sense of duty. A sense of dusy is useful in work, but offensive in personal relations.”(p.108)
 
그리고 여행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여행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목적은 우선 새로움의 발견이다. 좋은 여행이란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새로움이란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새로움이란, 그것이 없다면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구분되지 않고, 삶이 생기를 잃고 진부함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무엇이다.

새로움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쉽게 낯선 타자를 발견한다. 낯선 도시, 낯선 언어, 낯선 얼굴, 낯선 풍광, 낯선 생태, 낯선 음식, 낯선 모든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행지에선 나 자신이 하나의 이방인, 곧 타자가 된다. 스스로 타자가 되어보기. 이를 통해 그 동안 내게 익숙하고 편안했던 것들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며, 우리를 구속하고 얽어매는 것들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여행에서 만나는 새로움은 안팎에서 우리를 두드린다.
 
또한, 여행은 몸의 경험이자 놀이이다. 새로움의 발견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조용히 묵상하거나 좋은 강의를 듣거나, 벗들과의 즐거운 대화를 통해서도 온다. 여행과 이들 활동의 공통점이다. 여행이 다른 점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몸을 놀게 한다는 것 아닐까? 심미적 놀이와 체험을 통해 살아있음자유를 느끼는 과정, 이를 통해 삶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사유성찰로 나아가는 과정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새로움의 발견, 심미적 놀이와 체험, 살아있음과 자유를 느끼기, 사유와 성찰. 내가 생각해본 여행의 목적이자 여행의 본질이다. 이것이 없다면 무언가 여행다운 여행이라 하기는 어렵다.

박경리 선생은 외국 여행 한 번 나가보지 않고 <토지>를 완성했다고 한다. 한반도를 넘어 중국 만주와 상하이, 일본 동경을 넘나드는 대작을 쓰면서 정작 현지답사조차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상상력을 제약할까 싶었다는 것이다. <토지>가 완간된 지 한참 지나 1990년대 중반에 만주 일대와 중국 여행을 하신 선생은 당신이 자료를 보고 상상했던 것과 똑같았다고 하셨으니, 정말 그이는 한 자리에 앉아 천리 밖, 만리 밖을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을 지녔던 것이다. 그런 심미안을 가진 분이었으니 만약 선생이 우리처럼 해외여행을 자유로이 하셨더라면 어떤 여행기들을 남기셨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무튼, 선생의 삶과 말씀을 떠올려보면 늘 여행의 허상을 경계하게 되고, 여행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 시대의 여행은 트렌드로, 패션으로, 상품으로 소비된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0년대 말 이후 핵심유럽패키지투어동남아단체관광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들의 여행은 산티아고 순례길제주 올레길여행으로까지 진화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여행에 나서는 우리들 다수의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적 소비와 자기현시를 위한, 스펙으로서의 여행이다.
 
남들이 가보라고 한 곳은 반드시 가야하고, 남들이 맛있다고 한 것은 꼭 먹어야 하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선 사진부터 찍고 보는 여행.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도 해봤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무의식의 충동으로, 이곳에 다녀갔다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으로... 아직도 우리들의 여행은 이와 같은 패턴을 맴돌기 십상이다.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순수한 자유와 기쁨의 순간을 그렇게 헌납해버린다.
 
솔직히, 나 또한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느꼈다. 반성한다. 그러므로 좋은 여행이란 내 안에도 도사리고 있는 오래된 관습, 그리고 또 하나의 문화적 소비 욕망과 단호히 결별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다가올 여행의 지혜로 삼을 만한 나 자신의 지침을 여기 적어둔다.
 
욕심을 버릴 것. 여하한 강박에서 자유로울 것.
사진을 더 적게 찍을 것. 사진보다 먼저 눈으로, 마음으로 사물의 빛을 깊게 바라볼 것.
일정에 여백, 틈을 둘 것. 마음에 들면 언제, 어디서든 오래 머무를 것.
소비를 줄일 것. 예산 범위 내에서 악센트있게 소비할 것.
아이의 눈높이에서 여행할 것. 가족, 친구와 함께 여행할 때는 자기 욕구를 상당히 포기할 것. 좋은 친구와의 여행은 그 자체로 최고의 가치가 있음을 명심할 것. 대신, 아침·저녁에 잠시 혼자 시간을 가질 것.
사람들의 실제 삶을 느껴보고, 현지인들과 자주 대화해 볼 것.

* 아래는 뚜르꾸 시립 미술관에 전시된 핀란드 화가들의 그림들 중 마음에 들었던 것들이다. 미술관 안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안 되기 때문에, 이 사진들은 내가 사온 엽서들을 다시 찍은 것이다. 그런데 엽서만 보고 있어도 참 좋다. 여행 중 선재의 즐거웠던 순간도 함께 올린다.












2012년 8월 7일 화요일

뚜르꾸(Turku)/오보(Åbo) 여행기 - 2. 뚜르꾸 여행에서 좋았던 것들(2)

다음날 다시 찾은 뚜르꾸 성. 이번에는 성문 안으로 아내랑 선재를 데리고 들어갔다. 안은 밖과 또 다르다. 외부 공간이 닫히자 그 안으로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바깥과 구분되는 하나의 분명한 질서가 높은 돌벽의 수직축과 너른 돌마당의 수평축이 만들어낸 입방체 속에 구현돼 있다. 성의 건물은 크고 작은 160개의 방과 좁은 계단들, 긴 회랑, 창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뚜르꾸 성 내부는 지금 뚜르꾸의 역사박물관으로 리노베이션되어 일반에 공개돼 있다. 돌계단과 회랑을 오르내리며 성의 방들을 하나씩 들러 유서깊은 뚜르꾸의 역사를 탐험했다. 왕의 홀(King’s Hall), 여왕의 홀(Queen’s Hall), 성 교회(Castle Church), 예배당, 감옥방, 객실, 기록실... 건축과 전시 모두 훌륭했고, 중세 복장을 한 안내인들도 친절했다. 인상깊었던 마지막 전시실의 모습. 온오프 라인의 다양한 게임에서 중요한 콘텐츠로 활용되는 뚜르꾸 성의 역사와 전설이 전시돼 있다. 의 사이클을 마감한 성은 이제 다시 부활해 새로운 삶을 맞이하고 있는 듯 보였다.
 
Fontana. 성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Fontana”라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 치즈버거와 파스타, 그리고 호가든 한 잔에 행복하다. 쾌적한 실내 공간과 적당한 가격. Good!
 
뚜르꾸 대성당(Turku Catheral). 다시 강변으로 나가 다리를 건넌다. 핀란드의 전설적인 육상 영웅 Paavo Nurmi의 동상을 뒤로 하고 뚜르꾸 대성당으로 간다. 강변에는 여름 햇살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즐겁게 어울려 논다. 즐비한 보트들. 맥주와 와인, 술은 참 많이 마신다. 우리도 잔디에서 잠시 쉬다 성당으로 진입. 가까이서 보니 성당의 규모가 상당히 큰데, 뚜르꾸 성처럼 소박하면서도 장대한 건축 양식이 마음에 든다.
 
성당 내부도 아름답고 웅장하다. 예배당 앞 천장과 벽에 여러 점의 성화들이 그려져 있어 선재에게 대강의 의미를 설명해주니 호기심있게 잘 듣는다. 공간이 주는 울림과 경건함. 건축과 예술이 인간 문명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생각해본다.
 
성당 입구와 바깥 공원에서 발견한 미카엘 아그리콜라(Michael Agricola)의 흉상과 전신상.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교수로 있었던 독일의 비텐베르그(Wittenberg)에서 공부한 아그리콜라는 1554년 뚜르꾸 루터리안 교회의 첫 주교로 임명된 뒤 핀란드에 종교개혁의 물결을 일으킨 인물. 오늘날 핀란드인 85%가 복음주의 루터리안 교회(Evangelican-Lutheran Church)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핀란드 근대사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최초의 핀란드어 알파벳 책과 핀란드어 성경을 펴내는 작업을 통해 핀란드어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대성당을 배경으로 서 있는 아그리콜라의 전신상 앞에서 선구자적인 예지와 깊은 신념을 간직한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틀 동안 아빠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 다니느라 힘들어하는 선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 뒤 두 팔로 안고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강변의 흥성스러움은 성당을 경계로 잦아들고, 성당의 뒤쪽 공간은 고요하고 차분하다. 바로 뒤에는 <핀란디아>를 작곡한 핀란드 현대 음악의 아버지 쟝 시벨리우스(Jean Sivelius) 박물관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뚜르꾸 대학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아름다운 뚜르꾸 시립도서관.
 
셋째날 오전,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뚜르꾸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시립도서관을 여행 일정에 넣은 이유는 사실 땀뻬레 시립도서관이 참 예쁘고 훌륭해서 다른 핀란드 도시들의 도서관들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뚜르꾸 시립도서관은 그 이상이었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일요일에도 12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여는 도서관. 12시 전부터 도서관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서관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하나씩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놀라운 풍경은 나이 지긋한 장년과 노년의 시민들이 회랑의 긴 통로 좌석을 하나씩 차지하고 신문들을 가져다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일요일 낮 12시에 도서관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넓은 책상들을 가득 메우고 앉아 무슨 취미라도 되는 양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보는 사람들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신문 구독률을 자랑하는 핀란드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신문을 읽는지 짐작할 만 했다.
 
우리는 안내 데스크에 문의해 짐을 맡긴 뒤 선재를 데리고 어린이 도서 코너로 갔다. , 이렇게 예쁠 수가! 넓은 서고에 어린이 책들과 다양한 콘텐츠들이 가득한 가운데 알록달록한 실내 소품들과 넓은 마당이 내다보이는 통유리가 화사하기 그지없다. 선재는 도너츠 모양의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나는 도서관 구경을 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
 
넓고 밝은, 모던한 느낌의 공간 구성, 풍부한 책과 자료를 소장한 주제별 서고, 곳곳에 책읽기 좋은 책상과 소파들, 어디라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다 갔으면 싶었다. 저널 코너에 갔더니 주제별, 분야별로 핀란드와 해외의 저널이 가득 전시돼 있다. 멋진 카페와 조각 작품이 있는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소파에 앉아 ‘History Today’라는 잡지를 펴 들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 잡지는 전문적인 역사가들이 다채로운 주제로 글을 기고하는 계간지였는데, 내용이 퍽 깊이가 있으면서 흥미로왔다. 20세기 초기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시기의 중국 상하이의 거리 풍경이 오늘날 지구화된 자본주의 경제의 떠오르는 심장부가 된 21세기 상하이의 거리 풍경까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조명한 글을 읽으며, 도서관의 분위기 속으로 잠시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신관을 벗어나 구관으로 간다. 아주 우아한 건축 양식의 구관은 1903년에 설립됐는데, 원래 1818년부터 뚜르꾸 총독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2007년에 신관이 완공되면서 구관도 2008년 재건축되어, 지금은 문학, 음악, 미술 분야의 책과 자료들을 전문적으로 소장한 예술 도서관으로 기능한다. 입구에서 발견한 19세기 핀란드의 민족 시인 요한 루트비히 루네베르그’(Johan Lutvig Runeberg, 1804-1877)의 흉상. 그는 핀란드의 시골 풍경을 서사적으로 묘사하고, 러시아와 맞서 싸우는 핀란드인의 영웅성을 노래해 핀란드의 낭만적 민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통과 현대, 과학과 예술, 세대와 세대가 조화를 이룬, 참 아름다운 뚜르꾸 시립도서관. 이런 도서관을 가진 시민들의 안목과 역량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여행에서 돌아가면 땀뻬레 도서관의 매력도 다시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가다. 도서관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선재에게 배를 타고 인근 섬으로 들어가 물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던 터라 다시 도서관을 나와 선착장으로 향했다. Vepsä라는 섬까지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강의 하구와 항구를 지나 너른 마당 같은 뚜르꾸 앞바다의 풍광을 만끽했다. 조그만 섬에 내려 맛있는 피자로 점심을 하고 백사장 해변으로 가 선재랑 물놀이를 즐겼다. 수영장을 몇 번 다녔더니 그새 선재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듯 물 속에서 잘 논다. 잔잔하고 얕은 바다에 몸을 담그니 동해와 통영과 제주, 우리 바다의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마지막 배를 타고 돌아나올 때 마침 뚜르꾸 항으로 들어오는 ‘SILJA LINE’의 큰 크루즈 여객선을 만났다. 작은 섬 하나보다 커 보이는 엄청난 여객선을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구경하는 행운이라니! 여행의 마지막 대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