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6일 월요일

뚜르꾸(Turku)/오보(Åbo) 여행기 - 2. 뚜르꾸 여행에서 좋았던 것들(1)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여행 에세이를 쓰기보다 그냥 뚜르꾸 여행에서 좋았던 일들을 쭉 적어본다. 대체로 23일간의 시간 흐름을 따라가며 메모를 한 것이니 기록으로서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아쉽고 서운했던 것보다 좋았던 일을 주로 떠올리게 되니, 덩달아 좋은 여행의 추억이 되는 것도 같다.
 
여행 떠나는 아침, 선재가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길을 따라 나선 것. 일찍 일어난 덕분에 하루 종일 힘들어하긴 했지만, 아침만큼은 쌩쌩하고 씩씩했다. 어려도 여행이 좋은 것을 아나 보다. 집을 나서며 사진 한 컷, 기차를 타며 다시 한 컷. 대견하다. 여행을 하고 나면 한 뼘 더 자라기를 바란다.
 
1시간 45분만에 기차가 뚜르꾸에 도착. 아침 기차는 사람이 거의 없고, 조용했다. 생각보다 더 작고 소박한 뚜르꾸/오보 역의 첫 인상.
 
비슷한 듯 하면서 또 다른 뚜르꾸의 아침 시가지 풍경. 아내랑 걸어가며 땀뻬레와 뚜르꾸의 느낌을 비교해봤다. 뚜르꾸의 노란 버스, 스웨덴 풍의 건물들, 중세의 느낌, 항구와 강, 넓은 광장의 아침 마켓 등이 인상적. 땀뻬레의 파란 버스, 오래된 붉은 벽돌 공장 건물들, 높은 굴뚝에서 나는 하얀 연기, 운하와 호수를 따라 길게 형성된 거리 등과 많이 다른 느낌. 하지만 소코스(Socos), 스톡만(Stockmann), 스캔딕(Scandic), 노르디아(Nordea), 에스마켓(S-Market), R-끼오스끼(R-Kiosiki) 등 회사의 간판과 상표의 이름들은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핀란드에 많이 적응했구나 싶었다.
 
여행안내센터에서 뚜르꾸 카드’(Turku Card)를 사서 예산을 아낀 것. 24시간 21유로, 48시간 28유로, 가족카드 40유로. 우리는 56유로를 내고 48시간 카드를 두 장 샀다. 버스와 대중교통이 무료이고, 대부분의 뮤지엄과 유적지 입장이 무료. 2시간의 버스 투어도 1회 무료. 강 크루즈 유람선은 절반에 할인해준다. 선재는 아직 어려서 부모와 함께 무료 탑승과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아이가 크거나 여럿이면 가족카드를 선택하면 될 듯. 하나 더 좋았던 것은 마지막 날 아침 호텔을 나와 버스를 탔는데, 48시간에서 10분 초과된 뚜르꾸 카드를 버스 기사가 관대한 웃음으로 용인해 준 일.
 
뚜르꾸 항구에 위치한 ‘Best Western Seaport Hotel’의 첫 인상. 오래된 건물 외관과 입구의 식당, 바가 마음에 들었다. 뚜르꾸 성과 가까운 위치도 좋은 장점. 바로 옆에 Viking LineSilja Line의 터미널이 있다. 다음에 스톡홀름 여행할 때 저 배를 한 번 타보리라 생각했다. 오전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체크인이 가능했다.(우리가 숙박한 방은 조금 좁고 답답했지만 가격이 싸니 그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지, 했다.)
 
뚜르꾸 미술관(Turku Art Museum)에서 만난 몇 점의 핀란드 그림들. 지난 학기에 핀란드 예술사 강의를 두 시간 들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성찰적이고 내면이 깊은 핀란드 화가들의 초상화와 19세기 핀란드의 자연 풍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미술관을 나오다 몇 점의 엽서와 액자용 그림을 샀다. 더 오래 머무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엽서를 다시 들여다보며 흐뭇했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졸려서 힘들어하는 선재를 다그친 것이 미안하다. 좋은 그림을 더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나의 욕심 탓에 어린이가 고생했다. 여행에서도 욕심을 버려야한다는 것을 배운다.
 
미술관 앞 건물에서 만난 레닌 동상. 그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동판에 새겨진 핀란드어 설명을 사진 찍어와 해석해봤다. “V.I. 레닌은 1907년 러시아 짜르를 피해 이 집에 있었다.(V.I. Lenin kävi tässä talossa paetessään vuonna 1907 tsaarin venäjältä)” 핀란드 현대사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곳 땀뻬레에도 세계 유일의 레닌 상설 박물관이 있어, 곧 한 번 가보려고 한다. 100년 전, 붉은 혁명의 시대를 불꽃처럼 살다간 사람들의 운명을 생각해본다.
 
Forum Marinum의 멋진 전시. 규모가 큰 전시관의 내부도 아주 훌륭했지만, 아우라 강변에 정박한 여러 척의 범선과 해군 전함, 유람선 등에 실제 승선해서 체험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최고의 전시였다. 선재와 함께 크고 화려한 범선 한 척에 올라가 뱃전의 아름다운 풍광과 배의 다채로운 내부 구조, 선원들의 생활상 등을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었다. 선재가 아주 좋아함! 한 척의 배 안에 거대한 문명이 담겨있음을 느꼈다. 다음 여행에서도 또 들르고 싶은 곳.
 
뚜르꾸 성(Turun Linna). 11시 항구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질 무렵, 호텔서 혼자 나와 뚜르꾸 성의 외곽을 돌며 산책했다. 강의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크고 높이 우뚝 솟은 성벽이 마지막 햇살을 받고 있었다. 소박한 질감과 외관을 가진 오래된 건축물이 주는 고즈넉함. 아침부터 분주했던 호흡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깊어지고 느려졌다. 여행에서 돌아와 시를 한 편 썼다.

 
뚜르꾸 성()에서
 
자신의 세월을 다 살아낸 것은 모두
제 몸을 비워 가벼워진다.
 
소나무도,
호랑이도,
사람도,
()도 그러하다.
 
저 성의 세월을 채우며 살다갔을
수많은 인생들.
왕과 공주와 사제와 기사들,
그들의 통치 아래
온갖 수고로운 일을 하며 살다간 하층민들,
남자(mies)와 여자(laisten), 노인과 아이들, 농민과 수공업자와 병사와 죄수들...
 
성은 이제 그들의 인생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고즈넉이 서서 늙어간다.
 
백발 노인이 자손들의 안부와 재롱으로 늙어가듯이
성은 여행자들의 웃음과 포즈를 내려다보며
지나간 세월을 가만히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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