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6일 월요일

뚜르꾸(Turku)/오보(Åbo) 여행기 - 1. City of Turku

 
2012727()부터 29()까지 23일의 일정으로 핀란드 남서부의 항구 도시 뚜르꾸를 다녀왔다. 핀란드 도착 후 첫 가족여행! 작년 1211일 춥고 깜깜하던 겨울날, 핀에어를 타고 헬싱키 공항에 도착한 뒤, 모든 것이 낯선 도시 땀뻬레에 정착하느라 수고했던 우리 자신을 격려하고, 새로운 출발과 도전을 예비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유럽 다른 나라로 나가는 것도 고려했다가 성수기에는 모든 것이 비싼 터라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핀란드 도시들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여행지는 뚜르꾸.
 
뚜르꾸는 핀란드가 스웨덴의 지배를 받던 13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중세시대 500년 이상 핀란드의 수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 시민들은 스웨덴어를 많이 쓰고(스웨덴어Swedish는 핀어Finnish와 함께 핀란드의 공식 언어이다), 뚜르꾸는 오보(Åbo)라는 스웨덴어 이름을 함께 사용한다.(핀란드에 오기 전까지 사실 나도 뚜르꾸와 오보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도시인 것을 몰랐다.) 1807년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1917년까지 핀란드를 지배했던 러시아가 스웨덴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1812년 수도를 남쪽의 헬싱키로 옮기는데, 이때까지 뚜르꾸가 핀란드의 중심이었던 것. 1827년 뚜르꾸 시가 대화재의 참사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뚜르꾸의 실질적 위상이 하락하고 헬싱키가 명실상부한 중심 도시로 떠올랐다 한다. 이후 뚜르꾸는 상업과 무역 도시로 탈바꿈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핀란드어 뚜르꾸Turku는 러시아어로 시장market place, 스웨덴어 오보Åbo는 강(Å)가의 집(bo), 즉 뚜르꾸 성을 뜻한다고 한다.
 
뚜르꾸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간직한 도시여서 중세 시대의 핀란드를 통치했던 뚜르꾸 성(Turku Castle)과 핀란드에서 종교개혁과 루터리안 교회의 중심이었던 뚜르꾸 대성당(Great Catheral) 등 문화 유적이 풍부하다. , 1640년 설립된 뚜르꾸 대학(Royal Turku Academy)은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 등과 더불어 북유럽의 가장 오래된 대학 중의 하나였다. 1812년 수도가 헬싱키로 이전된 뒤 1820년 뚜르꾸 대학도 헬싱키로 옮겨졌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헬싱키 대학이 됐다. 한편, 현재 뚜르꾸에는 두 개의 대학교가 있다. 하나는 옛 뚜르꾸 대학의 전통을 살리고자 1918년에 설립된 오보 아카데미 대학(Åbo Academi University)으로 스웨덴어를 사용해 교육이 이루어진다. 또 하나는 핀란드어로 교육하는 첫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대중적 모금운동을 통해 1920년 설립된 뚜르꾸 대학(Turku University)이다.(당시에는 헬싱키 대학도 스웨덴어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뚜르꾸는 핀란드 내에서 독특한 역사적 유산과 문화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2011년에는 유럽문화수도(Cultural Capital of Europe)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풍광도 아름다워서, 도시 한 가운데를 아우라(Aurajoki)이 흐르고, 바다에는 우리나라 다도해처럼 많은 섬들이 둘러싸고 있다.(핀란드에는 호수도 많지만 섬도 많다. 기록을 보니 18만개의 호수와 18만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항구에는 스웨덴과 유럽 주요 도시를 오가는 ‘Viking Line’‘Silja Line’의 큰 여객선들이 드나들고, 북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물류 수송의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뚜르꾸와 내가 살고 있는 땀뻬레(Tampere)의 관계도 흥미롭다. 두 도시는 핀란드에서 헬싱키 다음으로 규모가 큰 도시들로 늘 2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데다, 여러 가지 상반된 특징을 갖고 있어 전통적인 라이벌이라고 한다. 중세의 중심지로서 항구 도시이며 스웨덴의 영향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는 뚜르꾸와 달리, 땀뻬레는 내륙에 위치해 북구의 맨체스터로 불리며 19세기 이후 근대적 산업화의 중심지였고, 노동운동과 사민주의의 요람 역할을 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두 도시는 영원한 라이벌로 불리는데, 두 도시 간에 아이스하키 경기라도 열리면 그 응원 열기가 볼 만하다고 한다. 재미난 일화도 많아서, 여기 땀뻬레의 대학생들은 해마다 500명 정도가 시청 광장에 모여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하늘로 뛰어 올랐다가 땅을 내려밟는 행사를 벌이는데, 지구를 기울여서 숙적 뚜르꾸를 바다 속으로 빠뜨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거꾸로, 2011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됐을 때 광장에 모인 뚜르꾸 시민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In the face of Tampere!’를 외쳤다고... 해석해보자면, ‘땀뻬레 면전에 (한 방 날렸어!)’ 정도 될까?
 
헬싱키나 땀뻬레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도시, 뚜르꾸로 그렇게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호텔을 예약하고, 기차표를 끊고, 도서관에서 뚜르꾸 여행 서적을 빌려다 공부도 하고 대강의 행선지를 정한 뒤, 짐을 꾸리고, 페이스북에 여행 인사도 남겼다. 아침 7시 기차라 서둘러야 했는데, 오랜만의 여행에 마음이 들떴는지 괜히 잠까지 설쳤다.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어쩌려나, 하면서 아침을 맞았다. 다행히 사흘 내내 하늘이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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