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5일 토요일

첫 겨울을 보내며 선재와 놀다

길었던 겨울이 갑니다.
추위와 어둠과 얼음의 세상은 이미 북상하기 시작했네요. 

지붕마다 길게 매달려있던 고드름이 다 녹고,
해가 날마다 두 뼘씩은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니까요! 핀란드에도 봄이 오고 있답니다!

가는 겨울이 아쉬웠는지 지난 주엔 온 가족이 한 차례씩  감기를 앓았습니다.
다음 주는 '스키 방학'이라 유치원도, 대학도 쉬어 갑니다.
우리의 봄 방학 같은 거겠지요.
계절의 순환에 맞춰 숨 고르고 갈 수  있어 고맙습니다.

오늘은 선재와 함께 눈썰매를 타고 놀았습니다.
그 동안 많이 못 놀아 준 것이 미안해 실컷 놀고 들어왔답니다.

동영상 몇 개 찍어봤습니다.
핀란드의 늦겨울 풍경을 함께 즐기시기 바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m9Qj-kUtmw4&feature=youtu.be

http://www.youtube.com/watch?v=MxMFxGs7USo&feature=youtu.be

http://www.youtube.com/watch?v=9DUY4I28wSA&feature=youtu.be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2012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이야기(4)

4. 

핀란드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다. 사실, 지난 25일 결선 투표를 치렀으니 열흘이나 지났다. 글을 빨리 썼어야 하는데, 결과가 좀 싱거웠고 핀란드 사람들도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간 듯 워낙 차분한 분위기여서 김이 샌 느낌이었다. 게다가, 다음 달로 예정된 나의 박사논문 연구계획서 발표 준비를 하느라 한 주를 분주하게 보냈더니 벌써 215일이 돼 버렸다. 어젯밤부터 관련 기사들과 인터넷 자료들을 다시 훑어보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결선 투표 결과 핀란드 사람들은 예상대로 보수당인 NCPSauli Niinistö 후보를 임기 6년의 새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Niinistö는 결선투표에서 62.6%의 득표를 올려 37.4%의 득표에 그친 녹색당의 Haavisto 후보를 여유있게 눌렀다. 이로써 1956Juho Kusti Passikivi 대통령이 물러난 이래 56년 만에 보수당 출신의 대통령이 배출되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냉전 시대에 소련의 강력한 견제를 받았던 핀란드는 외교 정책의 제약 때문에 보수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지금 NCP는 잔치 분위기다. 현재 보수당과 사민당, 스웨덴 인민당, 기독인민당, 좌파당, 녹색당 등 6개 정당이 연합하여 성립된 내각의 수상도 NCP의 젊은 정치인 Jyrki Katainen(1971년생)여서 NCP가 당분간 핀란드의 외교와 정치를 주도하게 됐다.(물론 핀란드는 합의적 의사결정 제도와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NCP가 독단적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현 대통령 Halonen 부부와 당선자 Niinistö 부부가 대통령궁에서 회동하고 있다.


, Niinistö의 당선은 지난 30년 동안 사민당 정치인들이 연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해왔던 기록을 깨뜨렸다. 핀란드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 중 하나였던 현 Tarja Halonen도 사민당 출신이다. 2001년과 2006년 선거에서 승리하며 지난 12년간 핀란드 대통령으로 활동해온 그녀도 이번 달로 임기를 마무리한다. Niinistö31일부터 6년간의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Niinistö는 어떤 인물인가 살펴보자. 그는 1948824일 핀란드의 Salo 지방에서 태어났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변호사로서 법률회사를 이끌었다. 1987년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1994년에 보수당인 NCP의 당수로 선출됐다. 1995년부터 사민당이 주도한 연합 정부에 장관으로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하다가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재무 장관으로 활약했다.(2001년까지는 부총리를 겸했다.) 당시 핀란드는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은 뒤 기술혁신과 경제구조 개혁을 통해 새롭게 도약하던 시기였다. 원래 핀란드의 전통적인 삼림과 제지업이 중심 사업 분야였던 대기업 노키아가 정보통신분야의 세계적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 이 때다. Niinistö는 재무 장관으로서 엄격한 재정 정책을 펼쳐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2003년 내각에서 물러난 뒤 유럽투자은행 이사회의 부회장이 되었다. 2006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결선에 진출했으나 현 대통령인 Halonen에게 졌다. 그러나 지난 6년간 핀란드 사람들은 Niinistö를 다음 대통령으로 대기 중인 인물로 여겼다고 한다. 2002년부터는 유럽연합 차원의 보수당 계열 정당들의 연합체인 유럽인민당(European People’s Party, EPP)의 명예 의장으로 활동해 오고 있으며, 2007년부터 20114월까지 핀란드 의회 의장을 맡았다.

앞으로 Niinistö 대통령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이미 살펴본 것처럼, 여러 차례의 헌법 개정으로 핀란드의 대통령은 예전처럼 강력한 권한을 갖고서 일상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다만, 국가 원수로서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며, () EU 문제에 대한 외교정책을 주도한다. 그러나 여전히 핀란드 사회의 여론 형성자로서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특별한 이슈들이 제기되지는 않았다. 다만, Niinistö와 보수당은 친EU 정책을 견지하고 있어 최근 유로존(Eurozone)의 위기 앞에서 고개를 드는 EU 회의론(EU Sceptical)을 차단하고 EU와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EU 내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민족주의 포퓰리즘 정당인 핀란드 사람들(the Finns)이 지난 해 실시된 총선(19.1%) 때에 비해 현저히 낮은 득표율(9.4%)에 그치고, 대선 후 실시된 정당 지지율 여론 조사(2.14.)에서도 지지율이 하락(16.5%)한 것으로 나타나 대선 후 지지율이 더 상승한 보수당(24.1%)의 친EU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밖에, 보수당은 NATO 가입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왔으나 이는 대다수 핀란드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는 사안이다. Niinistö 당선자도 이 사안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당선 연설에서 핀란드의 소외된 청소년들과 시골 지역에 대한 차별 해소와 통합적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역시 이번 핀란드 대선의 최대 화제는 최초의 동성애자 대통령 후보였던 녹색당의 Haavisto 후보의 첫 결선 진출이었다. 이는 핀란드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녹색당의 역사에서도 길이 기억될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Haavisto는 당초 낮은 지지도와 적은 선거자금으로 출발했으나 인권과 생태적 가치를 중심으로 논쟁을 이끌었고, 특히 SNS에 기반한 선거운동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젊은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결국 2차 투표의 벽을 넘지는 못했으나 그는 백만 명이 넘는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향후 핀란드 정치의 방향과 녹색당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핀란드 사람들(the Finns)이 약진한 뒤 민족주의, 포퓰리즘, 불관용의 방향으로 빠져들던 핀란드의 정치와 시민사회의 물줄기를 반대로 돌려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선 이후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도 녹색당은 계속 상승세(대선 전 7.6% 대선 후 9.6%)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이후 Haavisto는 국회의원으로 돌아갔지만, 차기 대선 등 주요 정치 일정에서 그의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부터 주목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녹색당 창당 소식이 들려온다. 핀란드의 이번 사례가 이들의 의욕적인 발걸음에 좋은 참고점이 되리라 믿는다.
 
한편, 이번 대선은 사민당의 패배였다. 지난 30년간 대통령을 배출했던 정당이 이번에는 결선투표에도 오르지 못하였고, 1차 투표에서 사민당의 Paavo Lipponen 후보의 지지율 또한 최악(7%)을 기록했다. Lipponen 후보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내각의 총리였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핀란드 의회 의장을 맡았던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그런 만큼 이번  패배는 뼈아프고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선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사민당 지지율은 16.1%를 기록하여 거듭 추락하는 모양새다.
사민당 패배에 대한 몇 가지 요인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먼저 대선에서의 고전은 지난 30년 간 사민당 출신 대통령들의 연임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과 반발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 보수당이 주도하는 연립 내각에 참여하면서 당수인 Jutta Urpilainen(1975년생, 여성)이 재무 장관을 맡고 있는데, 이로 인해 사민당의 고유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동시에 경제적 위기에 대응하는, 대중적으로는 인기없는 재정 정책에 대한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핀란드 사회에서 사민당의 정치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의 위기는 그 결과가 불러온 역설적 어려움이라는 것이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분석이다.(Guardian, 2012.2.2. “Finland's left has become a victim of its own success” 기사 참조)

주지하듯이, 핀란드는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의 성공사례 중 하나이다. 보편적 소득 평등과 복지 서비스에 더해 특히, 교육의 우수성, 양성 평등, 삶의 질, 청렴도와 투명성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대다수 유권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핀란드에서는 보수당도 감히 복지국가의 틀을 깨려고 하지 않으며, 민족주의 우파 포퓰리즘을 표방하는 핀란드 사람들(the Finns)조차 복지국가의 수호를 다짐하며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표를 끌어들이고 있다. 위 가디언의 기사는 보수당조차 자신들을 또 하나의 노동당a labour party’으로 자리매김하는 나라에서, 좌파들이 왜 필요할 것인가?”라고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더해, 핀란드 사민당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의 요구와 정치적 지지기반인 국내 노동조합의 요구 사이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가디언 기사는 지적한다. 또한, 60대가 당의 주류를 이루고, 노동조합과 연금생활자들의 기득 이익을 보호하는 늙은 정당의 이미지가 젊은 층에 퍼져있다. 그리스 등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법안이 계속 이어지자 대중들의 인내심은 한계를 드러냈고, 민족주의적 정서와 복지국가 수호를 결합시킨 포퓰리즘 정당으로 상당수 노동자들의 지지가 옮겨갔다. 물론 이는 핀란드 사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유럽의 사민주의 세력, 특히 북유럽의 중도 좌파 정당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안고 있다. 최근 북유럽 국가들의 사민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리더들이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의 Akersberga에서 모여 2030년 북유럽 모델의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앞으로 핀란드 사민당과 북유럽 모델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 핀란드 녹색당과 Haavisto 후보는 어떤 모습으로 핀란드 정치와 세계 정치에서 자신들의 발자국을 아로새길 것인가? 부유층과 대기업, 금융 자본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핀란드의 새 대통령 Niinistö는 현 대통령 Halonen처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지도자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북유럽의 외로운 늑대’, 핀란드의 정치와 그들의 미래를 함께 주목해보자.

헬싱키항에 위치한 대통령궁(왼쪽 아래). 특별한 경호시설 없이 플리마켓과 면해있다.

2012년 2월 1일 수요일

2012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이야기 (3)

3. 1차 투표의 결과와 주요 특징
- 보수당 우위 속 녹색당의 선전, 사민당-좌파 블럭의 패배, 포퓰리즘 우파 정당의 부진, 여성 후보의 약세


이번 핀란드 대선에는 8개 정당의 후보가 출마했다. 유권자들은 18세 이상의 핀란드 시민들로 구성되며 약 44십만 명이다. 해외 거주 핀란드인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1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 간 부재자투표(Advance Ballots, 선행 투표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를 실시했고, 122()1차 투표가 실시됐다. 선행 투표에서만 백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참여하여 약 3분의 1가량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1차 투표의 최종 참여율은 72.8%(3,060,771명)로 지난 2006년의 대통령 선거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핀란드는 결선 투표 제도가 있어 1차 투표에서 과반수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후보를 가려 2차 투표를 실시한다. 2차 투표는 25()로 예정되어 있는데, 125일부터 31일까지 선행투표가 진행되었다. 1차 투표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면 21일부터 임기를 시작하지만, 2차 투표까지 가게 되면 대통령의 임기는 31일부터 시작된다.

이번 핀란드 대선에는 8개 정당의 후보가 출마했다.   2번이 녹색당의 Haavisto 후보, 6번이 NCP의  Niinistö 후보.

1차 투표를 집계한 결과, 보수당인 NCP(National Coalition Party)의 후보 Sauli Niinistö(63, )와 자유주의적 성향의 녹색당(Green Party) 후보 Pekka Haavisto(53, )가 각각 37.0%18.8%의 득표를 해 1,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나머지 후보들의 득표 현황을 살펴보면, 중앙당(CEN)Paavo Väyrynen 17.5%, 극우 성향인 핀란드인 당(FINNS)Timo Soini 9.4%, 사회민주당(SDP)Paavo Lipponen 6.7%, 급진 좌파 세력인 좌파동맹(LA, Left Allies)Paavo Arhinmäki 5.5%, 스웨덴 인민당(SPP)Eva Biaudet 2.7%, 기독민주당(CD)Sari Essayah 2.5%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투표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당의 Paavo Väyrynen 후보가 2위를 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녹색당의 Pekka Haavisto가 녹색당 후보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 결선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이는 핀란드 정치사에서 처음 발생한 사건으로, 1차 투표 이후 핀란드에서는 녹색당의 지지율과 기부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Haavisto 후보는 정부 각료에 참여한 세계 최초의 녹색당 출신 장관이었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EU 녹색당의 총재를 역임한 국제적 인물이다. 그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EU 특별 대표로 수단 내전의 다르푸르 평화 협상에 참여했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라이베리아 등의 분쟁 지역에서 UN의 환경 프로그램 미션을 지휘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2002년부터 에쿠아도르 출신 미용사 Nexar Antonio Flores와 법적인 동거 상태에 있는 핀란드 최초의 동성애자 대통령 후보이다. ,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학위를 마치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이 공식 학력이다. 녹색당 Haavisto 후보의 예상 밖 선전은, 그의 최종 당선 여부에 상관없이, 향후 핀란드와 서구 민주주의에서 녹색 정치의 성장 잠재력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녹색당 Haavisto 후보의 파트너인 Antonio Flores.

둘째, 사회민주당과 좌파동맹을 포함한 좌파 블록의 지지율이 급감했고, 이로 인해 좌파 진영에서 대통령 결선 후보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좌파 후보의 선택지가 배제된 채 보수당 후보와 자유주의적 성향의 녹색당 후보 간의 선택으로 치러지는 선거는 핀란드 현대 정치사에서 처음 발생한 사건이다.
특히, 핀란드의 사회민주당은 스웨덴의 동료들처럼 지배 정당의 위치는 아니었지만 선거에서 안정적으로 20% 중반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핀란드 3대 주요 정당(NCP, CEN, SPD)에 속한다. , 농민당(The Agrarian Party)과 중앙당(CEN) 출신으로 1956년부터 1982년까지 25년간 장기 집권했던 Urho Kekkonen 대통령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은 모두 사민당 출신 대통령들이었다.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Tarja Halonen 현 대통령도 사민당 출신으로 200031일부터 12년간 집권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사민당 출신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 또는 싫증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부터 사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았고, 이로 인해 지지층 일부가 녹색당 후보에게로 옮겨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마지막으로 에스토니아를 국빈 방문 중인 Tarja Halonen 현 대통령.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2000년부터 12년간 재직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최근 유럽 전역의 사회 민주당들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유럽 전역에서 중도 좌파 정권의 부활에 기여한 3의길노선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에 대한 수동적 적응 노선으로 비판받아온 가운데,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와 EU 국가들의 재정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와 실업률 증가 등에 대해서도 아직 뚜렷한 정치적,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이민 정책과 반()다문화주의를 내세워 대중적 지지를 늘려가고 있는 포퓰리즘적 극우 정당들의 행보 앞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해왔다. 이번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사민당 후보의 초라한 성적표는 핀란드와 유럽의 정치 지형에서 사민주의적 대안의 재구성이 시급히 필요함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지표가 될 것 같다.

셋째, 포퓰리즘적 민족주의 정당인 핀란드인 당(FINNS) 후보의 지지율이 지난 총선 때보다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 당의 후보이자 당수인 Timo Soini는 상당히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지난 2011년 총선에서 반 EU 정책과 이민 제한 정책을 내세워 20%에 가까운 지지율(19.1%, 39)을 받았다. 이는 보수당(20.4%, 44) 및 사민당(19.1%, 42)과 거의 대등한 지지율이었고, 보수당이 사민당, 좌파 동맹, 녹색당, 스웨덴 인민당, 기독민주당 등과 집권 연합을 결성하면서 핀란드인 당은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핀란드인 당은 주요 인사들의 잇다른 인종주의적 발언과 돌출적인 정치적 행동으로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했고, 이번 선거에서 지지율의 하락은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정한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핀란드인 당 후보가 획득한 9.4%의 지지율은 지난 총선보다는 낮지만 지난 대선의 지지율 3.4%보다는 월등히 높은 것이어서 이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앞으로 계속 하락할 것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그리스 등 EU 회원 국가들의 재정 위기 국면에서 핀란드가 완고한 협상 태도를 견지했고, 이로 인해 독일 등이 주도한 EU의 새 재정 정책이 핀란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됨에 따라 유권자들의 반 EU 정서가 누그러졌다는 분석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Guardian,  Finland's pro-euro candidates set to win presidential election, 2012.1.20.) 참고로, 1, 2위를 기록한 후보들은 모두 친 EU 성향의 후보들이다.

넷째, 여성 후보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여성 후보는 2명으로 스웨덴 인민당(SPP)Eva Biaudet와 기독민주당(CD)Sari Essayah 후보이다. 1차 투표에서 이들은 각각 2.7%2.5%의 득표율에 그쳤다. 이들 정당이 원래 핀란드 정치에서 소수당에 속하기는 하지만 이번 득표율은 지난 총선 때 이들이 얻은 4.3%4.0%의 득표율보다 낮은 수치이다. 이는 한 명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와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중시되는 총선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태도 차이를 한편 반영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 여성 후보들의 성별 정체성이 유권자들의 판단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현 대통령 Tarja Halonen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명성을 누렸던 점과 대비되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회적 현실과는 별개로 성별(gender) 이슈가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는 대중적 판단이 형성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스웨덴 인민당(SPP)Eva Biaudet은 보건사회부 장관과 소수자 인권 옴부즈만(Finnish Ombudsman for minorities)을 역임했고, 대학 학위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스웨덴 인민당은 주로 핀란드 서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측면에서 스웨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이들은 비록 소수파에 속하지만 오랜 동안 핀란드 정부의 집권 연합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풍부한 국정 운영 노하우를 갖추고, 핀란드 정치에 상당한 협상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스웨덴 인들의 언어, 인종, 종교, 지역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스웨덴 인민당(SPP) Eva Biaudet 후보.


기독민주당(CD)Sari Essayah는 모로코인 출신 아버지와 핀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말하자면 다문화가정 출신의 여성 정치인이다.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그녀가 보수적인 기독교 가치를 주창하는 정당의 대표라는 점이 우선 흥미롭다. 20대에 육상 경보 종목의 유럽 챔피언과 세계 챔피언이었던 그녀는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지방정부에서부터 경력을 쌓은 뒤 핀란드 의회와 EU 의회의 의원으로 활동해왔다. 핀란드 기독민주당은 보수당인 NCP의 기독교 분파가 분리되어 성립한 정당으로 유럽 대륙 국가들의 기독민주당과는 달리 소수 정당에 속한다.

이제 핀란드 대선은 결선 투표를 향해 가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NCP(National Coalition Party)Sauli Niinistö65%, 녹색당(Green Party)Pekka Haavisto35%의 지지율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상당한 격차가 있는 수치이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NCPNiinistö가 핀란드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될 전망이다. 그는 어떤 인물이며, 어떤 정책을 펼치게 될까? 연이은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 축소된 상태에서 그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며, 국민들에게는 어떤 정치인으로 남게 될까? 그리고, 녹색당의 Haavisto 후보는 얼마나 득표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결선투표에 진출한 그가 상당한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이는 향후 핀란드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계속 관심을 갖고 다음 주를 기다려보기로 하자.

핀란드 공영방송에 출연해 결선 토론을 벌이고 있는 Haavsto 후보와 Niinistö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