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0일 월요일

2012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이야기 (2)


2. 핀란드 근현대사와 대통령의 제도적 권한

우선, 그동안 공부한 것을 정리해볼 겸 핀란드의 대통령 제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핀란드는 정부 구성의 원리로서 의원내각제를 운영하는 나라이면서도 별도로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다. 게다가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 원수로서 역할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2000년 헌법 개정 전까지 매우 막강한 권한을 누렸다. 대통령은 의회가 선출한 총리의 각료 임명 제청을 거부할 수 있었고,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대한 거부권은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독단적인 의회 해산권까지 갖고 있었다. 특히, 외교 정책은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 영역으로 의회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1994년까지는 대통령 임기의 연임 제한도 없었다.
 
실제로 전후 핀란드를 이끈 우르호 케코넨(Urho Kekkonen) 대통령은 1956년부터 1981년까지 무려 25년간 장기 집권했다. ,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Presidentialism)에서 나타나는 대통령의 위상과 다를 바 없이,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으로 강력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핀란드 외에도 프랑스 등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이런 유형의 정치체제를 정치학자들은 준 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라고 개념짓기도 한다. 이는 입헌군주정을 바탕으로 의회 중심의 민주주의(Parliamentarism)를 운영해온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큰 차이가 있는 정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25년 간 장기 집권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한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

핀란드의 독특한 헌정 체제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핀란드의 근현대사를 조금 알 필요가 있다. 기원후 약 1000년경 바다와 육상에서 맹위를 떨친 바이킹의 시대가 저물고 중세 시대가 시작된 이래 핀란드는 오랜 동안(12세기~1809) 스웨덴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북유럽의 패권은 덴마크 왕국에 있었는데, 덴마크는 북부 독일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등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에 와서 프랑스 혁명 등으로 유럽 전역이 근대사의 격변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면서 북유럽 지역도 정치적, 사회적 재편기에 들어가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 프랑스와 연합했던 덴마크 왕국이 몰락하게 되고, 노르웨이에 대한 지배권을 스웨덴에 넘기게 된다. 한편, 이 시기는 러시아가 제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서쪽으로의 팽창 정책을 추구하던 때였고, 러시아는 스웨덴을 공격하여 핀란드를 차지한다. 이로써 약 6백년 간 스웨덴의 영토에 속했던 핀란드는 러시아의 통치를 받게 된다. 다만, 근대적인 국민국가 시스템의 식민지와 달리 내정에서 상당한 자치 권한을 가진 핀란드 대공국(Grand Duchy)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핀란드 대공으로 즉위한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 주권 통합은 역설적으로 노르웨이와 핀란드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스웨덴과 러시아의 느슨한 지배와 대내적 자치 상태 속에서 헌법 제정과 근대적 의회 설립을 통해 자유주의적 정치 질서를 실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독립된 근대적 주권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낭만적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는 19세기 내내 북유럽 사회의 위기와 변화를 불러온 핵심 원동력이 되었다. 지배자인 스웨덴과 러시아는 강온 정책을 오락가락하며 두 나라의 독립 요구를 억압하려 했으나 한 세기 동안 축적된 에너지는 결국 20세기 초반 국제 정세의 변동을 계기로 격렬하게 분출하게 된다.
 
1905년 노르웨이가 먼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20세기 벽두부터 양국 간에는 긴장이 고조되면서 전쟁의 위험마저 감돌았지만, 결국 노르웨이의 독립 선언을 스웨덴이 받아들이면서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은 평화적으로 해소된다. 핀란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7년 말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한다. 그 해 2월과 10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생하면서 권력의 공백이 생겨난 틈을 타 핀란드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보수주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백색파(the Whites)과 사회민주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적색파(the Reds) 간의 갈등과 적대가 커져갔고, 핀란드 공화국은 독립 직후 양 세력 간의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내전은 4개월간 짧고 격렬하게 치러졌다. 흥미롭게도 내가 지금 유학하고 있는 도시, 땀페레(Tampere)가 이 내전의 한 중심지였다. 땀페레는 산업혁명기에 건설된 북유럽의 맨체스터로서 사민주의자들의 영혼의 고향으로 불렸다. 19181월 적색파가 처음 쿠데타를 일으킨 이래 땀페레는 이들의 주요 거점 지역이었고, 같은 해 4월에는 백색파의 총사령관이자 핀란드 독립의 상징적 인물인 만네르하임(Mannerheim)이 내전의 분수령을 가른 결정적 전투에서 승리한 곳도 이 곳 땀페레였다고 한다. 여하튼, 초기에는 러시아의 10월 혁명 후 들어선 소비에트 정부에게 간접 지원을 받은 적색파가 헬싱키를 점령하는 등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소련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독일 제국의 지원을 얻은 백색파가 개전 초기의 불리함을 딛고 결국 승리한다.

핀란드 내전 당시 백군과 적군의 세력 분포를 나타낸 지도

내전 후 백색 핀란드는 입헌군주국(Constitutional Mornarch)을 지향하여 독일 헤센의 왕자 프리드리히 칼을 군주로 추대하였으나 독일 제국의 몰락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핀란드 의회는 공화정(Republic)을 기본으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면서 대신 애초 국왕에게 부여하려 했던 권한들을 대통령이 수행하도록 하는 타협책을 택했다. 그리고 1919년 카를로 우호 스톨베르그(Karlo Uho Stålberg)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정부를 운영하게 된다. 이때부터 핀란드 대통령은 외교정책을 책임지고, 군 통수권자의 지위를 가졌으며, 의회 해산권도 보유하게 되었다.
 
이처럼 헌법적으로 강력하게 디자인된 대통령의 권한은 이후 핀란드의 고유한 정치적 조건과 맞물려 더욱 중요해지게 된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핀란드의 극단적인 다당제 시스템. 흔히 스웨덴의 정당 체제를 '5 정당 모델'이라고 하는데, 좌파 블럭의 급진 좌파 정당과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 그리고 우파 블럭의 농민당, 자유당, 보수당으로 구성된 정당 체제를 일컫는다. 핀란드는 이 다섯 정당에 더해 2~3개이 정당이 더 경합을 벌이는 체제로서 극단적인 다당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당 체제에서는 자주 소수당 정부가 집권하는 정치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처럼 다양한 정치세력 사이에서 누구도 안정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리더십 행사가 더욱 커질 수 있었다.

둘째, 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을 상대로 한 두 번의 겨울 전쟁 이후 냉전이 종결될 때까지 핀란드는 외교정책에 관한 한 사실상 소련의 동의와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외교 정책은 선거와 국내 정치의 쟁점이 되지 못했고, 의회의 통제 범위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대통령의 배타적 권한을 더욱 강화시켰다.
1977년 경제 교류 프로그램에 서명하는 핀란드의 케코넨 대통령과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 
셋째, 1956년부터 장기집권한 Urho Kekkonen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헌법상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Kekkonen은 서방(미국, 유럽, NATO)과 소련 사이에서 중립적인 외교 정책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고, 외교 정책의 성공을 통해 전후 핀란드의 국가 안보와 경제적 번영의 기틀을 다졌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남으로써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동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Kekkonen 대통령의 사임 이후 집권한 사민당 출신의 대통령과 의회의 정치 엘리트들은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을 축소하기를 원했고, 이후 핀란드 의회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하고 총리와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차례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1991년의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임기가 2회 연임으로 제한되었고, 선출 방식도 선거인단의 간접 선거에서 일반 유권자들의 직접 선거로 전환됐다.

때맞추어 1991년에는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핀란드의 외교 정책을 제약했던 외부적 틀이 해체됐고, 이는 대통령의 배타적 권한을 정당화했던 한 요소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1995년에는 핀란드가 EU에 가입하게 되면서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EU 무대에서 정부를  대표할 권한을 조정할 필요도 생겨났다.

1994년 10월 EU 가입 국민투표가 가결되자 이를 축하하는 지지자들의 모습

이에 핀란드는 2000년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이 외교 정책을 책임지되 정부와 그 역할을 함께 나누도록 했고, 특히, EU 관련 이슈들은 거의 배타적으로 정부의 소관에 두도록 변경했다. 또한, 대통령은 의회의 입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의회는 이를 재의결함으로써 법안을 실행시킬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현재 핀란드 의회는 다시 헌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권한(각료 임명 거부권 등)을 더욱 제약하는 내용이어서 논쟁이 되고 있다.

2012년 1월 29일 일요일

선재의 겨울나기 - "눈썰매꾼"이 되다!


날씨가 제대로 춥다. 온도가 일주일 전부터 영하 10도 아래에서 계속 머물더니, 오늘은 영하 17도까지 내려갔다. 일기예보를 보니 다음주에도 계속 추워져 영하 21도까지 내려갈 모양이다.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은 이상 기온으로 올 겨울이 따뜻하다고 한다. 또 워낙 추위에 익숙한 탓인지, 온도에 별로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지내는 것 같다.

가만보니, 노인, 여성, 어린 아이들 모두 바깥 활동을 꺼리지 않는 것 같다. 마을 숲 길 산책이 하루 일과의 필수인 듯 하고, 눈길에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옆면이 넓은 유리로 설계되어 안과 밖이 환하게 보이는 시립 수영장(우리 집 바로 근처에 있다)은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로 매일 붐비는데, 다이빙 시설과 얕은 물놀이터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어린 아이들도 즐겁게 물놀이를 한다.

그리고 또, 많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야외에서 스케이트와 아이스하키를 즐긴다. 광장이나 호수에서 놀 수도 있지만, 마을에서도 숲 공원이나 학교에 있는 운동장에 얼음을 얼려놓고 거기에서 스케이트와 아이스하키를 하며 논다. 눈 쌓인 숲 속 언덕에서는 선재 또래의 아이들이 아빠, 엄마와 함께 스키를 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선재는 아직 스키와 스케이트 장비를 갖추지 못해 눈썰매로 겨울 놀이를 즐기고 있다. 오늘도 선재와 둘이 마을 숲 공원으로 가서 눈썰매를 타고 왔다. 이제는 제법 혼자서도 잘 타고, 썰매를 들고 언덕길을 씩씩하게 올라온다. "눈썰매꾼"이 다 됐다고 칭찬해주니 더 열심히 타고 논다. 영하 15도의 날씨에 눈썰매를 타느라 볼이 빨갛게 상기되고 콧물이 나도,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가도 선재는 마냥 신나게 논다. 내년 겨울에는 선재와 스키를 배워야겠다.









2012년 1월 24일 화요일

2012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이야기(1)

1. 들어가며
 
올해 한국은 총선과 대선이 예정되어 있어 어느 해보다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뜨거운 해가 되고 있다.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심각하게 추락하고 집권 여당의 분열과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반면, 야권은 통합민주당과 진보통합당으로 새로이 진용을 갖추고 결집하면서 정치적 리더십의 큰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구촌으로 눈을 돌려보면, 올해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해이기도 하다. 이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김정은의 승계에 따른 권력 교체와 맞물려 한반도 정세에도 큰 변화의 시기가 임박하고 있음을 예상하게 한다. 유럽에서도 프랑스와 러시아 등에서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최근 내가 유학 온 핀란드에서도 지난 해 실시된 총선에 이어 지금은 대통령 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아직 핀란드어의 기초 회화를 익히고 있는 수준이라 영어로 제공되는 공영방송 YLE의 온라인 뉴스와 헬싱키 타임즈(Helsinki Times), 그리고 영국의 가디언(Guardian) 등을 살펴보고 있는데, 인상적인 기사들이 제법 많다. 유럽연합의 여러 국가들이 재정 위기를 겪고 있고, 핀란드의 경제 사정도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 국가 원수로서 핀란드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특히 전통적으로 핀란드의 외교 정책을 결정해온 대통령의 자리에 핀란드인들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핀란드와 북유럽 국가들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연구하러 온 나로서는 매우 즐거운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시작한다. 오늘부터 2차 결선 투표가 치러지는 25일 이후까지 몇 차례에 걸쳐 핀란드의 정치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핀란드와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과 교육, 복지, 환경 정책 등에 관심이 높지만, 이러한 제도와 정책의 바탕에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제도와 시민적 정치 문화가 놓여있다는 것을 직시하는 이는 아직 드물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들의 민주주의와 정치문화의 면모를 조금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유럽연합 이슈와 핀란드의 국내 정치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최근 핀란드 정당 체제에는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등도 두루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내가 핀란드에 건너온 것이 이제 갓 한 달 남짓이다. 부지런히 연구하고 현장을 경험하려 준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깊이있는 분석과 통찰까지 담아내기는 역부족의 시간이다. 그래도 이 계기와 경험을 그냥 넘기는 것은 아까운 일 같다. , 글을 쓰면서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펜을 든다.  내친 김에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관심을 가져 보자.  지구촌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우리의 손 끝에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총선과 대선도 더 넓은 시야에서 조망해 볼 필요가 있겠다.

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2012년 1월 10일 화요일

1월의 개강, 시작하는 마음

1.
어제, 1월 9일 드디어 개강을 했다. 공립 유치원에 신청서를 내고 대기 중인 선재도 일단 영어 유치원으로 첫 등원! 보름달이 아직 채 저물지 않은 이른 아침,  세 식구가 버스를 타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선재는 조금 수줍어 할 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금방 섞여들어가는 눈치.  영국 출신의 남자 선생님은 쾌활하고 다정했다. 먼저 와있던 아이들도 모두 온순해 보인다. 선재처럼 이날 처음 나왔다는 파키스탄 남자 아이와 함께 레고를 맞추며 노는 모습을 보고 돌아섰다.  저녁에 집에 왔더니 선재도 표정이 나쁘지 않다. 오늘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좋았다' 하는데, 대답이 짧긴 하다...


2.
오늘은 개강 둘째날. 어제처럼 선재를 데려다주고 아침 일찍 학교 도서관으로 왔다. 도서관 내부의 독서 공간은 너무 정적인 듯 하여 바깥의 카페테리아로 다시 나온다. 생수 한 병, 커피 한 잔을 사서 창 가의 넓은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는다. 창 너머로 동이 트는 하늘이 조금 보인다. 아침이라 사람이 적은 탓에 마치 어느 호텔의 조식 레스토랑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하긴 워낙 조용한 사람들이다. 적당한 침묵과 여백 속에서 낮게 수런거리는 현지어들이아침의 명상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어제의 피로가 녹는 듯... 조금 곤두서있던 신경줄도 잠시 누그러진다.  그렇게 도서관 카페테리아에 앉아 시를 한 편 썼다.


3.

어슴푸레 밝아오는 북구의 하늘,
눈 내린 거리는 창백한 표정으로 빛나고,
푸른 기운의 아침이 건물 사이의 공간을 채워간다.
호밀 빵과 진한 커피가 놓인 쟁반을 받쳐들고
호수의 정령 같은 핀란드 처녀 둘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즐겁게 지저귄다.
나의 고향에선 하루가 저무는 시간,
그러나 해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 솟아나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삶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나 또한 지금,
주위의 생명들 속에서,
더불어 살려 애쓰는 한 '생명'이다.


4.
오늘은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핀란드어 수업을 처음 들을 예정이다. Tapio 교수(지도교수)와 한국의 친구들에게 답장을 하고, 그리고는 계속 독서...

요즘 핀란드와 북유럽 국가들의 역사에 관한 책 몇 권을 빌려 읽고 있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현 북유럽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역사적 맥락과 배경에 대한 지식은 필수일 터. 그리고 늘 느껴왔듯이,

이론은 역사로부터 구체적인 상을 얻어야 한다.
이론에서 역사로,
역사에서 다시 이론으로,
여러 차례 왕복하면서 북유럽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나만의 통.찰.과 시.선.을 구성해보자.

No Rush!
쫓기지 말 것!
한 발 한 발, 그렇게 가는 거다.

2012년 1월 3일 화요일

꿈의 해석 - 서원과 어린이


세상의 모든 서원과 그곳의 가르침은 어린이보다 위에 있지 않다.”

 


새벽녘 꿈에서 본 책의 문장 하나가 가슴을 치는 아침. 잃어버린 기억 속에 묻혀있던 나의 옛 친구 둘도 함께 나타나 나를 깨우친다.

초등학교 친구이자 고3때도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그 때의 높고 힘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교육(개혁)의 본령과 목표는 친어머니에 있지 않다고. 위대한 현자들은 야생의 환경 속에서, 실패와 어려움을 내적으로 통합하며 성장했다고. 대학 때 심리학과를 다녔던 친구는 말보다 하나의 사소한 동작으로 나를 가르쳤다. 사고의 방법이 늘 남들과 달랐던, 비범한 그 친구. 그다운 작은 일상의 동작 하나가 내게는 큰 깨달음을 주었다.
 
잠에서 퍼뜩 깨어 우물을 들여다보듯 내 꿈 속을 되짚어본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서원도, 그들의 오래된 진리도, 나이든 가르침도 세상에 새로움을 가져오는 어린 존재들보다 위에 있지 않다.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환경과 지식으로 확립된 가르침을 제공하는 것에 결코 머무를 수 없다. 그리고 자주, 드러난 말보다 몸의 동작 하나가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새해 아침에 상서로운 꿈. 자취를 감추던 길이 안개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