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땀페레 겨울 햇살 여행

크리스마스 연휴의 마지막날. 밤새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더니 오전에 하늘이 개였다. 핀란드 도착한 지 보름만에 파란 하늘이 나타난 것. 햇빛이 건물들의 위 벽 부분에 길게 금을 긋는 모습에 잠시 환호하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시내로 나섰다.

께스꾸스또리(Keskustori) 광장에서 버스를 내려 본격적으로 햇빛을 따라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점심 예배에 참석했던 오래된 교회(Old Church) 안마당을 가로질러 땀페레 시를 가로지르는 운하 쪽으로 내려서 둘레길을 걸어가니 도시 남쪽의 큰 호수로 연결됐다. 물빛은 검지만 들여다보니 바닥이 보인다. 청둥오리가 열마리도 넘게 무리지어 놀고 있다.





선재랑 눈을 감고 얼굴 가득 햇살을 받는 놀이를 한다. 언덕이나 계단 앞에서는 달리기 놀이를 하고... 오후 1시에 벌써 태양은 남서쪽 하늘가에 낮게 걸려 있고,  눈이 부시게 햇살을 쏘아댄다. 호수 위를 불어오는 바람이 몹시 찬데, 대기가 맑고 깨끗해서 머리 속이 상쾌해진다.

추워하는 아내와 선재를 데리고 호수가의 극장 건물로 잠시 피신. 준비해간 따듯한 황차와 비스켓을 나눠 먹고, 영화 예고편들도 덤으로 감상한다. 영어 음성에 핀란드어 자막이 깔리는 화면이 신기하다. 이삼년 뒤에는 저 글자들이 한 달음에 들어와야 할 텐데... 될까?

다시 호수로 나와 다리를 가로질러 간다. 저만치 크루즈 유람선들의 선착장이 눈에 들어온다. 산책하는 몇 명의 수오미(Suomi)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간다.  호수는 운하 때문에 유속이 있어 서인지 마치 강처럼 느껴진다. 물길을 따라 더 내려가보고 싶지만 선재에게 무리일 듯 싶어 다시 광장으로 나와 버스를 탄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았더니 우리 세 식구의 얼굴도 모두 환해진 듯!





북유럽의 겨울 햇살과 맑은 호수의 풍광을 여기 기록해둔다.  좋은 하루였다.

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핀란드의 크리스마스 풍경

뉴스를 보니 서울은 많이 추운 모양이다. 여기는 올해 그리 춥지 않은 편이라는데, 겨울에는 햇빛을 보기가 거의 어려운 날씨라 벌써부터 한국이 그리워지려 한다.
 
지난 11일에 핀란드 도착해 그새 2주가 흘렀다. 학교 등록을 마치고, 행정 등록 절차를 알아보고, 살림을 안정시키느라 움직이다보니 어느덧 크리스마스. 조용한 산타클로스의 나라에서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 풍경을 전하고 싶다.
 
한국의 풍경과 가장 다른 점은, 이곳 크리스마스는 정말 조용하다는 것. 23일까지는 거리마다 사람들이 붐비고,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제법 북적였다. 그러나 24일 오후부터 25일까지는 모든 상가와 공공기관이 문을 닫고, 버스도 아예 운행을 안 한다! 26일에도 공공기관은 휴무이고, 상가도 주간에 4시간만 문을 열 수 있단다. 버스는 일요일 시간표로 다니고...
 
학교에서 보낸 안내 메일을 보니 연휴 기간에는 몇 군데 펍과 클럽, 그리고 호텔들만 문을 연다고 한다. 정말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끊기고, 드문드문 차량 몇 대가 지나가는 수준으로 한산하다. 대부분 교외로 나갔는지 아파트들도 불 켜진 집이 잘 안 보인다.
 
어제(24) 버스가 끊어지기 전에 시내 구경을 갔다가 땀페레의 가장 오래된 교회에 들어가 성탄 예배에 참여해보았다. 검은 양복과 넥타이를 맨 장년의 남성 합창단이 멋진 중저음으로 찬송가를 이어 부르고, 중간 중간 하얀 미사복을 걸친 젊은 핀란드 여성 사제가 설교와 기도를 주관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핀란드 인구의 85퍼센트가 믿는다는 루터리안 교회의 심플하고 깨끗한 건축 양식만큼이나 그들의 의례도 소박하고 경건했다. 번다하고 권위적인 형식이 거의 제거된 가운데 한 시간 정도 예배가 진행되고, 교회를 가득 채운 사람들도 조용히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사제와 합장단이 사용하는 핀란드어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 음색은 참 음악적이고, 울림이 있다. 나는 비록 크리스천이 아니지만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 속에서 예수의 탄생을 함께 축하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우리 가족도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이틀을 보냈다. 겨울비 내리는 마을 근처의 숲을 함께 산책하고, 미리 장만해놓은 재료들로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었다. 어제는 연어 구이,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다!!^^ 심심한 선재는 날더러 계속 놀아달라고 '요구'한다. , 이 어린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어찌할꼬! 핀란드에서 맞이한 첫 크리스마스 연휴가 이렇게 지나간다.

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땀페레 일기, 시작하다

2011. 12. 25.() 04:43 a.m.
 

새벽에 잠 깨어 텅 빈 땀페레(Tampere)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잠시 인터넷을 방황하다 다시 길을 잡는다. 오래된 회의주의에 종지부를 찍자. 세계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이 더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깨달음. ‘생에 대한 외경(Reverence of Life)'을 근본 사상으로 삼아 뭇 생명을 보살피는 데 헌신하는 삶으로 나아간 알베르트 슈바이처. 그의 삶과 사상 속에서 길을 발견한다. 이제는 미혹(迷惑)되지 말고, 멀리 걸어가자.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