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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일 수요일

핀란드 국가인권행동계획 세미나 참관기

[2014. 4. 2. 기자협회보 칼럼]

3월의 마지막 날, 핀란드 법무부와 의회 인권센터, 내가 유학 중인 땀뻬레(Tampere) 대학교가 공동 주최한 인권 세미나에 참석차 헬싱키에 있는 의회를 다녀왔다.

세미나에서는 2012년 4월, 현 정부가 채택한 핀란드의 첫 국가인권행동계획(2012~2013)에 관한 평가보고서가 발표됐다. 땀뻬레대 공법학과 연구팀이 작성한 평가보고서는 행동계획이 핀란드의 국가 인권 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특히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해 국가인권정책을 발전시킨 점을 높이 평가했다. 보고서는 아울러 1차 행동계획에 인권정책의 우선순위가 명시되지 않은 점을 비판하면서 정부 프로그램 및 예산과 면밀하게 연계된 행동계획의 수립을 제안했다. 나아가, 다소 산재돼 있고 자원이 불충분한 국가인권체계를 강화할 필요성도 제시했다.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한국도 2007년부터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이 수립, 시행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핀란드의 인권정책 논의가 반드시 빠르고 앞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또 우리의 경우처럼 구조적 인권 침해와 차별적 실태가 만연한 현실에서 형식적 정책 체계의 수립 자체가 인권의 실현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세미나는 내게 핀란드에서 인권 정책과 담론이 발전해온 역사적 과정을 짚어볼 수 있게 했다.

사실 핀란드에서도 인권 정책의 발전은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현상이다. 물론 북유럽 국가로서 핀란드에도 사민주의적 평등과 연대, 시민적 자유의 전통이 시민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그러나 냉전 시기 핀란드는 소련의 간섭과 제약으로 자의반 타의반 외교적 중립정책을 고수했고, 이는 국제인권 이슈에도 적용됐다. 1975년의 헬싱키 평화협약은 동서 갈등에 끼인 핀란드의 지정학적 곤란을 역으로 활용해 적극적 국제외교 전략을 구사한 결과였다.

핀란드가 국제인권 레짐에 본격 합류한 것은 1990년대다. 소련의 붕괴로 핀란드는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와 유럽인권협약(ECHR)에 가입할 수 있었고, 나아가 1995년부터 EU 회원국이 됐다. 같은 해 핀란드는 헌법의 기본권 조항들을 유럽인권협약에 맞춰 전면 개정했고, 그 연장에서 2000년 헌법의 전면 개정을 단행했다. 이 시기 핀란드는 EU 의장국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국제외교활동을 전개했는데, 특히 인권, 양성평등, 국제원조, 평화중재 등의 의제를 선도하며 인권 국가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여전히 외무부의 외교 전략의 일부처럼 인식되던 인권 의제가 핀란드 정부의 정책 형성에 중심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00년대 이후다. 2002년부터 학교 교육에서 인권교육이 대폭 강화됐고, 2007년부터 정부 프로그램의 주목표로 인권실현의 촉진이 포함됐다. 2011년 임기를 시작한 현 정부는 국가인권행동계획을 채택하기로 의회에 보고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권은 핀란드 정책형성 회로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공간 이동했다.

이번 세미나에는 핀란드의 전 대통령 따르야 할로넨(Tarja Halonen)과 전 의회 옴부즈맨 리따-레나 빠우니오(Riitta-Leena Paunio), 의회 헌법위원장 요한네스 꼬스끼넨(Johannnes Koskinen)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특히, 인상적인 사람은 할로넨 대통령이었다. 비서도 없이 소박한 차림으로 나타난 그녀는 단순한 축사가 아니라 풍부한 경륜에 바탕한 구체적 논평을 제공했다. 국가 권력과 시민 간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가까운 북유럽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다.

할로넨 대통령의 이력도 참 흥미롭다. 헬싱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할로넨은 학생운동을 거쳐 1971년 사민당에 가입했고, 1970년부터 핀란드 노총(SAK)의 변호사로 일했다. 70년대 후반 헬싱키 시의회와 핀란드 의회 의원에 당선됐고, 1980~81년에는 핀란드 동성애 단체(SETA)의 대표를 역임했다. 보건복지장관(1987~90), 법무장관(1990~91), 외무장관(1995~2000)으로 활약한 뒤 2000년 핀란드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돼 2012년까지 연임하며 인권 외교와 성평등에 앞장섰다.

높은 대중적 지지와 국제적 명성을 누렸던 그녀는 퇴임 후에도 인권, 민주주의, 시민사회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녀의 인생 역정에서도 우리는 핀란드의 인권 정책과 문화가 발전해온 궤적을 찾아볼 수 있다.


1부 세미나에서  평가보고서에 대한 코멘트를 하고 있는 따르야 할로넨(Tarja Halonen) 대통령.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의회와 내각의 요직을 거쳐 대통령까지 지낸 그녀는 현대 핀란드의 양성평등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지금도 대중적 인기가 높다. 2002년과 2006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고(故)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회담한 일이 있다.

2부 세미나의 패널 토론. 의회 헌법위원장 요한네스 꼬스끼넨과 의회 인권센터 소장 끄리스띠나 꼬우로스(Kristiina Kouros) 등이 앉아 있다. 사회자는 내가 속한 땀뻬레대 정치학과의 전임 강사 따르야 세빠(Tarja Seppä)로 국제인권 전문가이다.

의회 인권센터 소장 끄리스띠나 꼬우로스(Kristiina Kouros)가 인권 정책과 담론의 다양한 층위와 실현 양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핀란드에는 국가인권기구가 의회 옴부즈맨 산하의 인권센터 형태로 설치돼 있다. 시민들의 진정에 대한 조사와 구제는 옴부즈맨이 직접 담당하고, 인권센터는 주로 인권 정책, 연구, 교육, 협력 기능을 맡고 있다.

<기자협회보 칼럼> 바로가기: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3258
 

2014년 3월 12일 수요일

아이슬란드 재발견 (2): 금융 위기 이후 아이슬란드의 도전과 혁신

2014. 2. 26. <기자협회보> 글로벌리포트/ 북유럽
 
아이슬란드는 최근 전 지구적 기후 변화, 국제안보 환경의 변화, 인터넷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 등 현대적 도전들에 대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2014년 1/2월호에 실린 아이슬란드 대통령 올라푸르 라그나르 그림손(Olafur Ragnar Grimsson)의 인터뷰에서 그러한 모습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최근 기후 변화와 북극권 개발이 큰 이슈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혹독한 기후 조건과 국제적 고립에 시달렸던 아이슬란드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까지 개발 이익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 사안에 대해 아이슬란드는 일찌감치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더불어 ‘북극이사회(The Arctic Council)’ 등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평화·생태적 방향으로 북극권 개발이 이루어지도록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지열 등 친환경 에너지를 잘 활용해온 경험과 전문성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둘째, 아이슬란드는 군대가 없는 나라로 평화 국가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냉전 시대 미·소의 중간에 놓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NATO의 회원국이면서 미국의 군사기지로 이용됐던 아이슬란드는 많은 핵무기가 배치돼 있던 세계적 군사요충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국제안보 환경이 변화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벌였던 미 부시 정부가 2006년 아이슬란드 미군 기지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본래부터 자국 군대가 없던 아이슬란드는 ‘한 명도 무기를 든 사람이 없는’ 완전한 비무장 국가가 되었다. 올라푸르 대통령은 말한다. “전통적인 관념과는 반대로, 아무런 군사적 요소 없이도 러시아, 미국, 캐나다, 북유럽 국가들, 중국, 인도, 프랑스, 독일 등과 폭넓은 국제관계를 맺고 높은 수준의 외교활동을 통해 성공적인 국가를 갖는 것이 가능합니다.”

셋째, 인터넷 정보 사회의 도래 속에서 아이슬란드는 정보와 언론의 자유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 위키리크스(Wikileaks)의 설립자들이 아이슬란드에 머물고 있고, 지난해 미국 정보기구 NSA의 불법적 정보 수집을 폭로했던 스노든이 애초 망명을 희망했던 곳도 아이슬란드였다. 2010년 6월, 아이슬란드 의회는 세계 각국의 진보적 법률들을 참고해 ‘아이슬란드 현대 미디어 발의(Icelandic Modern Media Initiative, IMMI)’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발의는 아이슬란드를 정부 당국들로부터 정보와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고, 특히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공개를 감행하는 저널리스트들과 출판가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는 미디어 천국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최근 아이슬란드 의회에도 진출한 해적당(The Pirate Party)의 욘스도띠르(Birgitta Jonsdottir) 의원이 주도했다.

한편, 2008년 금융 위기 직후 중대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아이슬란드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헌법 개정 논의를 벌였는데, 이 과정에 큰 폭의 시민 참여와 민주적 혁신 프로세스가 가동됐다. 당시 위기를 초래한 정부와 정책결정권자들에 분노한 시민들은 의회와 중앙은행 등에 몰려가 대규모 항의 집회를 벌였다. 심각한 폭력 사태로 발전하진 않았지만, 위기 직후의 아이슬란드는 정치적 시스템과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 대한 시민 불신이 아주 높은 상태였다. 총리와 중앙은행장의 사퇴, 조기총선을 통한 새 내각의 구성을 이끌어낸 시민들의 정치적 에너지는 결국 헌법의 전면 개정 요구로 이어졌다. 시민들은 단지 개별 정부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아이슬란드 사회를 다시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2009년 11월, 풀뿌리 시민조직들의 발의로 새 헌법안을 마련하기 위한 시민의회가 구성됐고, 얼마 후 정부도 일반 시민 대표들로 구성된 ‘헌법위원회’를 설립했다. 수개월에 걸친 숙의, 토론, 표결, 온라인 포럼과 SNS 피드백 등 광범위한 시민 참여 과정을 통해 헌법 초안이 성안됐다. 비록 최종 단계에서 보수정당들과 엘리트 세력의 벽에 막혀 새 헌법 제정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일반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와 숙의를 통해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고자 했던 이른바 집단지성의 민주주의(crowdsourcing for democracy) 실험은 세계시민사회의 큰 관심을 받았다.

북유럽의 변방이자 북대서양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 경제위기를 딛고 다양한 안팎의 도전에 맞서 혁신적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이 나라와 그 시민들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기자협회보] 칼럼 바로가기: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3007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아이슬란드 재발견(1): 2008년 금융 위기의 성찰과 교훈

20141 22(), <기자협회보>에 실은 칼럼입니다. 북유럽에서도 변방의 작은 섬나라로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아이슬란드에 관해 썼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재발견!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최신호에 실린 올라푸르 현 아이슬란드 대통령 인터뷰를 읽으며 여러 측면에서 이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거든요. 무엇보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명료한 성찰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아울러, 다음 칼럼에서는 금융 위기 이후 헌법 개정 등을 단행한 아이슬란드의 민주적 혁신에 대해 한 번 더 다루려 합니다. 칼럼은 그의 인터뷰 기사에 더해 올라푸르 대통령의 지난 수년 간의 연설문과 주요 해외 언론 보도, 관련 학술 논문 들을 추가 참조했습니다.

1월이 어느덧 하순으로 접어들었는데, 지금 핀란드에는 뒤늦게 찾아온 한파가 매섭습니다. 어제 오늘, 땀뻬레도 영하 25도의 강추위네요. 한겨울 추위에 늘 건강하시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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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재발견(1): 2008년 금융 위기의 성찰과 교훈
[글로벌 리포트 | 북유럽]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연구원

미국의 저명한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신년호에 아이슬란드 대통령 올라푸르(Ólafur Ragnar Grímsson)의 인터뷰가 실렸다. 아이슬란드 대학의 첫 정치학 교수였던 그는 1996년 아이슬란드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5번째 연임하고 있다. 정치적 지혜가 풍부한 이 학자 정치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는 북대서양 꼭대기에 위치한 인구 32만의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중세 이래 덴마크 지배를 받은 아이슬란드는 1944년 독립한 뒤에도 냉전 시기 미·소 열강의 핵무기 경쟁과 대립의 한복판에 있었다. 북극권의 혹독한 기후 환경과 국제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지정학적 조건에 놓인 가난한 수산업 국가였던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 들어 산업구조의 전환을 꾀한다. 당시 유행을 따라 영미권의 신자유주의적 경제모델을 받아들여 많은 산업을 민영화하고, 특히 은행 등 금융 산업의 탈규제와 자유화를 단행했던 것. 결과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산업 팽창과 이들이 견인한 국내총생산(GDP) 성장 행진이었다. 비슷한 경로를 채택한 아일랜드와 더불어 아이슬란드는 새로운 모델 국가처럼 떠올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해외 은행과 투자자들의 돈을 무분별하게 빌려다 쓴 사설 은행들은 국가 GDP의 10배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었다. 이 지속 불가능한 경제 시스템은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뒤 직격탄을 맞고 무너진다. 2008년 가을 아이슬란드 정부는 재무자산 동결 조치와 함께 사설 은행들을 국유화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이웃 북유럽 국가들, 심지어 중국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한 올라푸르 대통령의 명료한 자기반성이었다. 어떻게 은행들이 그렇게 커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1980년대부터 서구에 만연했던 이데올로기는 더 많이 규제를 완화하고, 더 많이 사유화하고, 더 많이 금융 시장에 자율권을 줄수록 우리 모두 더 이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뿐 아니라 서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우리 모두 자본주의는 주기적 위기의 시스템이라는 역사적 기억을 잊었지요. 우리는 얼마간, 자본주의가 더 이상 위기의 시스템이 아니라 해마다, 또 해마다 계속 성장하는 공식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어요.”

올라푸르에 따르면 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대법관을 책임자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설립해 은행은 물론 재계, 정부, 대통령, 언론, 대학 등 모든 책임 주체들의 실패를 조사해 보고했다. 특별검사를 임명해 다수의 전직 은행장들을 기소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중앙은행과 금융 규제 당국의 리더십을 일신하고, 많은 법적, 규제적 변화를 단행했다. 철저한 국가적 반성과 조치를 통해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 위기의 교훈을 공동체의 역사 속에 아로새기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2011년 8월 IMF 위기관리 체제를 종료했다. 2012년부터는 2% 내외의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실업률도 약 5%로 유럽 국가들의 평균보다 낮다. 아직 많은 시민들이 경제위기의 여파로 고통받고 있고 유럽경제의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에 비해 위기의 터널을 잘 빠져나온 것으로 평가된다. 역설적으로 금융위기 직후 관광산업이 호황을 누렸고, 재생에너지산업과 북극권 개발 협력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했다. 우수한 교육과 복지 시스템의 기반 위에, 풍요로운 신화와 문학적 전통에서 나오는 문화 부문의 창조력도 빼어나다.

하나 특기할 것은 금융 산업으로 흡수되던 우수한 인재들이 다른 분야로 진출하면서 IT 산업 등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올라푸르는 말한다. “은행들이 무너지기 전까지 우리는 은행들이 수학자, 프로그래머, 컴퓨터 과학자를 고용하는 하이테크 기업이 됐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요. 그러나 은행들이 무너졌을 때, 이 뛰어난 인재풀이 갑작스레 시장에 나왔고, 이들 모두 6개월 내에 하이테크와 IT 회사들로 채용했습니다. 지난 4년 간 이 분야는 위기 이전 4년보다 더 발전했지요. 제가 월스트리트의 많은 친구들에게 말하는 아이슬란드 경험의 한 가지 교훈은, 당신의 국가를 21세기 경제에서 경쟁력있게 만들고 싶다면 큰 금융 산업은 근본적으로 나쁜 뉴스라는 겁니다.”


 현 아이슬란드 대통령 Ólafur Ragnar Grímsson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수려한 풍광 속에 자리한 대통령 공관. 방문객들도 종종 대통령을 만나 인사할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한다.  기회가 닿으면 꼭 방문해보고 싶은 곳.


2008년 11월 금융 위기 당시 의회 의사당 앞에 모여 시위하는 아이슬란드 시민들. 30만 인구의 약  2%인 6천여명이 집결했다고 한다.
 
 
 
<Foreign Affairs> 2014 1-2월호, 올라푸르 대통령 인터뷰 기사 바로가기: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언론 자유와 공공성이 공존하는 북유럽 저널리즘

2013년 12월 4일자 기자협회보에 실은 칼럼입니다. 북유럽 언론 모델의 현황과 특징을 소개하는 연재를 마무리했습니다. 방송의 공공성, 언론 자유, 높은 직업  전문성이 공존하는 북유럽 미디어 시스템의 특징을 '민주적 조합주의' 모델로 분류하는 전문가들의 논의를 소개하고, 이를 영미권의 자유주의적 모델, 지중해권 주변의 단극적 다원주의 모델과 짧게 비교해보았습니다.

지면 제약으로 충분히 논의하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면서 2013년 현재, 우리나라의 미디어 시스템은 어떤 모델에 가까울까 계속 생각했습니다. 얼핏 지중해권의 단극적 다원주의 모델과 가까운 듯 싶지만, 요즘의 퇴행적 상황을 놓고 보면 민주화 이후 여전히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의 유산과 씨름하는 러시아와 일부 동유럽 국가들의 그것에 더 흡사하지 않은가 여겨집니다. (아래 본문에서 소개한 Hallin과 Mancini의 2011년 연구를 추가 참조)

이 또한 길게 보면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를 우리 사회가 내면화하고 학습해가는 과정일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 공론장의 토대 자체가 훼손되고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가장 염려됩니다. 특히, 언론인들의 직업 전문성과 자율성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나면 훗날의 언론 개혁조차도 기약하기 어려워질까 걱정됩니다.

북유럽 언론 모델에 관한 연재는 이번 칼럼으로 마치고, 다음 글부터는 북유럽 사회의 최근 이슈들을 주로 다루어볼 생각입니다. 12월에도 늘 건강하시고, 한 해 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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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공공성 공존하는 북유럽 저널리즘
[글로벌 리포트 | 북유럽]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연구원

북유럽 언론 모델을 찾아서 <4>

2012년 봄에 북유럽 미디어의 특징에 관한 땀뻬레대 저널리즘학과 위르끼 위르끼아이넨(Jyrki Jyrkiäinen) 교수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의 바탕에 합의적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가장 잘 보장되는 시민문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터라 큰 관심이 갔다. 위르끼 교수는 과연 북유럽 저널리즘 연구의 전문가답게 상세한 데이터를 인용해가며 핀란드와 북유럽 미디어 시스템의 특징을 생생하게 전해줬다.

그런데 북유럽 미디어 모델의 특징을 논하면서 미디어 시스템 비교 연구의 권위자인 홀린(Hallin)과 맨시니(Mancini,2004)의 개념을 원용해 ‘민주적 조합주의(Democratic Corporatism)’으로 요약하는 대목에서 충격을 받았다. 민주적 조합주의란 북유럽을 포함한 중부 유럽 국가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사회적 의사결정 원리로 노동시장의 임금과 고용, 나아가 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정책의 핵심 내용을 자본, 노동, 국가가 3자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미디어 시스템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민주적 조합주의 모델이라니, 언론학도가 아닌 나로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의문은 나중에 두 저자의 책을 직접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본 뒤에야 풀렸다. 무엇보다 한 사회의 미디어 시스템은 그 사회의 정치적, 역사적 컨텍스트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정치 체제의 구조적, 문화적 특징이 미디어 시스템에 일정한 패턴으로 조응해 나타난다는 설명에서 중요한 이해를 얻었다.

이들의 분류에 따르면 민주적 조합주의 언론 모델은 주로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에서 나타나며 이는 영국과 미국, 캐나다 등의 자유주의 모델,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지중해 주변의 단극화된 다원주의 모델과 구분된다.

민주적 조합주의 언론 모델의 특징은 우선, 신문 열독률이 높고 대중 신문이 일찍 발달했다. 둘째, 역사적으로 정당 연계 신문들이 강하게 발전하고 나중에 점차 중립적 상업신문들로 전환했다. 셋째, 저널리스트들의 직업 전문성이 강하고 제도화된 자기 규제가 작동한다. 넷째, 의회주의 혹은 사회적 조합주의에 입각한 공영방송 거버넌스가 발전했다. 그러나 방송 보도에 관한 직업적 자율성은 매우 높다. 끝으로, 미디어 규제와 언론 지원 정책 등 국가 개입의 정도가 강하지만 동시에 언론 자유는 철저히 보호된다.

영미권의 자유주의적 모델에서도 언론의 자유나 저널리스트들의 직업 전문성이 높게 나타나지만 이는 국가의 개입이 제한된 시장 지배적 모델로 최근 미디어의 상업화와 기업화, 독점 경향 등을 선도하고 있다. 영국은 BBC의 우수한 공영방송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최근 미디어 재벌 머독과 그가 소유한 언론사들이 보인 반민주적 행태들을 떠올려 봄 직하다. 반면, 단극적 다원주의 모델은 국가의 강한 개입과 약한 직업 전문성이 결합된 권위주의적 특징을 보여준다. 이 모델의 취약성은 미디어를 장악한 뒤 정치권력까지 거머쥐고 국정을 농단했던 이탈리아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 사례가 잘 보여준다.

최근 북유럽에서도 미디어의 상업화와 기업화 등 많은 변화가 관찰된다. 언론의 상업화 경향은 197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언론 미디어 조직들도 기존의 사회정치적 모델에서 벗어나 이윤 추구형 기업 모델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는 미디어 비즈니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기업들의 주식이 시장에 상장되고, 미디어 대기업들이 성장했다. 복지국가의 위기론 속에서 우파 정권들이 집권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공공부문 개혁이 추진되던 시기다. 2000년대부터는 인터넷 기반의 멀티미디어 비즈니스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언론 모델은 위에서 살펴본 민주적 조합주의 모델의 특징을 아직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신문 열독률이 하락 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방송 채널의 다원화와 상업화 경향 속에 공영방송의 시청률이 많이 하락했지만 지금도 다른 매체들에 비해 시민들의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 언론 자유, 높은 직업 전문성이 공존하는 북유럽 언론 모델의 진화가 주목된다.

[기자협회보 칼럼] 바로가기: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2409

*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위에서 소개한 Hallin과 Mancini (2004)의 책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바랍니다.

<미디어 시스템 형성과 진화>, 다니엘 C. 핼린, 파올로 만치니 지음 | 김수정, 정준희, 송현주 옮김 | 한국언론재단 | 2009년 10월 30일 출간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OnelineKor.laf?mallGb=KOR&barcode=9788957112366&linkClass=17130311&ejkGb=KOR

2013년 10월 31일 목요일

YLE 혹은 핀란드 공영방송에 관한 짧은 보고서


핀란드 공영방송 YLE에 관한 칼럼을 썼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북유럽 각국의 신문산업을 차례로 소개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제가 살고 있는 핀란드 사례를 좀더 자세히 전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북유럽의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는 하나의 지역적 클러스터를 이루면서 여러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시스템과 저널리즘의 특징도 기본적으로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나라를 깊게 이해하면 다른 북유럽 나라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현지에 와 보니 북유럽 나라들도 서로 차이점이 많다는 주장을 늘 접합니다. 당연한 현상이겠지요. 우리 눈에 동아시아 삼국이 그렇게 다른 것처럼..ㅎㅎ)
 
사실 요즘의 한국 언론 현실을 감안하면 북유럽의 미디어 시스템과 저널리즘의 특징을 찾아 소개한다는 이 칼럼의 취지가 참 무참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특히, 최소한의 자유주의적 원칙조차 무시하는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의 힘 앞에 공영방송의 위상이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최근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그래도 누군가는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언제든 한국의 언론 현실을 타개하는 새로운 정치적, 정책적 노력이 전개될 때 북유럽 언론 모델에서 참고할 것이 많으리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씁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 만추(晩秋)의 차분함으로 11월을 건너가야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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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아깝지 않은 핀란드 공영방송


[글로벌 리포트 | 북유럽]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연구원
 
북유럽 언론 모델을 찾아서 <3>

핀란드의 공영방송을 YLE(와이엘이 또는 윌레)라고 한다. 국영 공기업의 형태로 지분의 99.9%가 국가 소유이다. 1926년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1957TV 방송을 처음 했다. 현재 가장 오래되고 핀란드에서 시청자도 가장 많은 YLE TV1, 1964년 설립된 YLE TV2, 스웨덴어 방송 채널인 YLE FEM, 교육과 문화, 과학, 다큐멘터리 중심의 YLE TEEMA 4개 방송 채널을 운영한다. 2012년 현재 전체 TV 시청률의 42.2%를 차지한다. 6개의 라디오 채널과 25개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도 운영한다.
 
공영방송으로서 YLE는 의회의 YLE 운영위원회로부터 감독을 받는다. 위원회는 YLE 이사회와 사장을 임면할 권한이 있고, 방송사의 재정과 행정의 운영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며, 특히 방송사가 민주주의, 다양성, 소수자 인권보호 등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하는지 감독한다. 이러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은 북유럽 방송시스템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개별 프로그램이나 뉴스 보도 등의 편집 방향에서는 언론 자유와 저널리즘의 자율성이 철저히 보장된다.
 
위원회는 핀란드 의회 의원 21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원내 정당들의 힘의 크기에 비례해 선출되며 사회 각 분야와 계층을 대표하는 인사들로 구성된다. 현재 위원장은 사민당, 부위원장은 보수당이며, 위원들은 보수당 4, 사민당 4, 녹색당 1, 좌파연맹 1, 스웨덴인민당 1, 그리고 야당인 중앙당과 핀란드인 당4명으로 구성돼있다. 비례대표제에 기반해 의회와 행정부를 구성하고 합의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이를 운영하는 핀란드의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공영방송의 운영구조에도 투영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작년까지 TV 수신료를 받아 운영됐는데 2013년부터 법이 바뀌어 별도의 세금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YLE .’ 일정 소득이 있는 모든 개인에게 부과되며, 나도 연간 140유로의 세금을 낸다. 인터넷 등의 발달로 TV 단말기 없이도 서비스 접근이 가능한 현실을 반영한 개혁 조치란다. YLE는 당연히 모든 채널에서 광고가 없다. 한국은 방송의 공공성 논란으로 KBS의 수신료 인상도 어려운데 핀란드는 새로 공영방송세를 걷는다는 사실이 작은 충격이었다. 동료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YLE 방송 프로그램이 훌륭하고, 인터넷 서비스 등에서 충분히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세금이 아깝지 않단다.
 
필자도 그동안 YLETV 프로그램과 인터넷 서비스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우리의 경우에 비추어 많은 차이도 느꼈다. 우선,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의 비중이 낮고,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의 비중이 크다. 이들 프로그램에는 늘 총리와 장관들과 의회 의원들이 인터뷰이나 토론자로 나와 정치적 현안을 논의한다. 나아가, 역사, 사회, 문화, 자연, 과학 등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가 매일 숱하게 방영된다. , 남녀노소 전 계층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편성이 이루어진다. 형식적인 수준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보통 시민들이 날마다 TV에 주인공으로 나온다. 가령, 평일 오후 5시부터 방송되는 TV2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다채롭고 창의적인 내용들로 가득해 수십 년 간 사랑받고 있다. 청소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이들 프로그램은 'YLE AREENA'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통해 무료로 제공된다. 디자인도 깔끔한데다 각 채널과 주제별로 잘 분류된 동영상 프로그램 등 서비스 이용이 참 편리해서 나도 매일같이 애용한다. , 2006년부터 'Elävä arkisto'라는 온라인 아카이브가 구축돼 1900년부터 현재까지 주요 방송 자료들이 인물, 장소, 사건, 프로그램, 주제 별로 분류돼 있다. 둘 다 로그인 절차도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그 비용을 시민들이 세금으로 낸 것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BBC도 부럽지 않을 정도라고 하면 지나칠까?
 
최근 핀란드도 방송의 상업화와 미국화 경향 등 안팎의 도전이 거세다. 그러나 합의 민주주의적 제도운영, 저널리즘의 자율성, 지속가능한 공공재정, 시민들의 높은 신뢰를 토대로 질 높은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영방송 YLE가 있어 핀란드의 방송 시스템은 아직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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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LE AREENA 홈페이지 TV 프로그램 화면
 

YLE AREENA 홈페이지 RADIO 프로그램 화면

 
YLE AREENA 홈페이지 TV 어린이(Lapset) 화면. 왼쪽 큰 그림이 전통을 자랑하는 YLE TV2의 어린이 프로그램 “Pikku Kakkonen”이다.  

 
YLE의 온라인 아카이브 Elävä arkisto 홈페이지 화면1.
 
19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연도별로 주요 방송 자료들이 분류돼있고, 인물, 장소, 사건, 프로그램, 테마 별로도 검색이 가능하다. 사진의 화면은 20세기 핀란드를 대표하는 인물인 Urho Kekkonen 대통령에 관한 1972년 뉴스 자료. 그는 1956년부터 1982년까지 26년간 장기집권하며 냉전 시기 미소 양대국의 틈새에서 능수능란한 외교 역량을 발휘해 핀란드의 독립과 평화를 유지하고, 사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복지국가를 건설한 인물이다. 카리스마 강한 인물로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의 퇴임 후 핀란드가 점차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온전한 의회주의로 권력 구조를 전환해가는 배경이기도 하다.

 
Elävä arkisto 홈페이지 화면2.
 
핀란드가 EU에 공식 가입한 소식을 알리는 199511일 뉴스. EU 관련 정책의 의사결정권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의회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당시 대통령은 Mahti Ahtisaari (아래의 화면 3)로 퇴임 이후 코소보 내전 등을 중재한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당시 대통령과 논쟁을 벌였던 의회 헌법위원회 위원장이 바로 현 대통령인 Sauli Niinistö(아래의 화면 4)이다. 화면 오른편에 조그맣게 보이는 그래프는 1994년 핀란드의 EU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 찬성이 57.0%, 반대가 43.0%로 나타났음을 알리는 당시 뉴스이다. 이처럼 Elävä arkisto에 소장된 자료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20세기 이후 핀란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학생들의 교육이나 시민교육 자료로도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

 
Elävä arkisto 홈페이지 화면3. 당시 대통령 Ahtisaari가 내각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Elävä arkisto 홈페이지 화면4. 당시 의회 헌법위원장 Niinistö (현 핀란드 대통령)가 뉴스 인터뷰하는 모습.
 
YLE AREENA 바로가기:
http://areena.yle.fi/tv
 
Elävä arkisto 바로가기:
http://yle.fi/elavaarkisto/artikkelit/suomi_euroopan_unioniin_ja_eurovaluuttaan_26426.html#media=26445
 
[한국기자협회보] 칼럼 바로가기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2138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단절’보다 ‘진화’하는 북유럽 신문산업

북유럽 신문산업의 현황과 특징을 주제로 [기자협회보 칼럼]을 썼습니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순으로 각 나라별 주요 신문들의 발간 현황을 소개하고 전반적 특징을 짧게 언급했습니다. 지면 제약으로 구조적 특징이나 최근 변화 등에 대해 충분히 논하지는 못했는데, 연재를 마무리하는 글에서 다시 다룰까 합니다. 다음 번 칼럼에서는 북유럽 방송시스템의 현황과 특징을 다룰 계획입니다. 지면은 짧고, 언론 전문가도 아닌 터에 북유럽 미디어 시스템과 저널리즘을 소개하려니 조심스럽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를 찾느라 발품도 많이 드는군요. 혹 사실과 어긋난 정보가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십시오. 블로그에서나마 바로 잡겠습니다. 어디에서든 좋은 햇살과 바람 누리시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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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보다 ‘진화’하는 북유럽 신문산업 - 북유럽 언론모델을 찾아서<2>

[글로벌 리포트 | 북유럽]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연구원

지난 9월4일, 핀란드 대기업 노키아가 휴대전화 부문을 통째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매각하기로 한 결정을 발표했다.핀란드의 방송과 신문들은 이번 결정의 내용과 배경, 국내외 여론과 시장 반응, 내각과 주요 정당의 의견, 노키아 직원들의 고용 상황, 노키아의 150년 역사와 향후 전망 등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다.

나는 이 뉴스를 핀란드의 가장 대표적인 전국 일간지인 ‘헬싱키 사노마트’(Helsingin Sanomat)를 통해 접했다. ‘헬싱키 소식’이라는 뜻의 이 신문은 매일 40만 부 이상을 발간하며 독자 수 약 100만 명의 북유럽 최대 일간지다. 핀란드의 가장 큰 미디어 기업인 ‘Sanoma News’가 발간한다.

핀란드는 인구 540여만 명에 유료 신문 194개, 주 4회 이상 일간지 51개가 있다.(2010년 현재) 31개는 7일 내내 발간되며 이는 북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수다. 전국 신문으로 ‘Helsingin Sanomat’ 외에 오락 위주의 두 석간 ‘Ilta-Sanomat’(16만부)와 ‘Iltalehti’(12만부), 스웨덴어 신문인 ‘Hufvudstadsbladet’(5만부), 그리고 사회민주당과 연계된 ‘Uutispäivä Demari’, 중앙당의 ‘Suomenmaa’, 좌파연맹의 ‘Kansan Uutiset’가 있다. 지역 신문 중 5만 부 이상을 발간하는 주요 신문은 9개가 있다. 중부 내륙의 산업도시 땀뻬레의 ‘Aamulehti’(13만부)와 스웨덴 영향이 강한 남서 해안도시 뚜르꾸의 ‘Turun Sanomat’(11만부)가 대표적이다. 핀란드는 현재 ‘언론의 자유’ 지표에서 5년 연속 세계 1위이다.

다른 북유럽 나라들의 신문 산업 현황도 대동소이하다. 인구 940여만 명으로 북유럽에서 가장 큰 스웨덴은 유료 신문 161개, 주 4회 이상 일간지 78개가 있다. 스톡홀름의 ‘Dagens Nyheter’(33만부), 예테보리의 ‘Göteborgs-Posten’(24만부), 말뫼의 ‘Sydsvenskan’(12만부)이 3대 전국 일간지다. 발간 부수로는 오락물 중심의 석간 ‘Aftonblade’(37만부)가 가장 크다. 대부분은 지역 신문들로 헬싱보리의 ‘Helsingborgs Dagblad’, 팔룬의 ‘Dalarnas Tidningar’가 규모가 크다. ‘Dagens Nyheter’ 등을 소유한 ‘Bonnier Group’이 가장 큰 신문기업이다.

인구 1000명당 신문 발간 부수가 571부(2008년)로 세계 두 번째인 노르웨이는 인구 500만에 226개의 유료 신문이 발간되며, 주 4회 이상 일간지도 75개에 이른다.(2010년) 가장 큰 전국 신문은 ‘VG’(18만부)이고, 그 뒤를 ‘Dagbladet’와 경제지인 ‘Næringsliv’ 등이 잇고 있다. 이 밖에 사민당의 ‘Dagsavisen’, 기독당의 ‘Vård Land’, 급진좌파 성향의 ‘Klassekampen’ 등 정당 관련 신문들이 있다. 오슬로의 ‘Aftenposten’(22만부)은 지역 신문이지만 2010년부터 ‘VG’를 제치고 발행부수 1위로 올라섰다. ‘Aftenposten’을 소유한 ‘Schibsted’가 최대 기업이다.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덴마크는 신문 구독 부수가 그리 높지 않고, 신문의 수도 계속 감소해 현재는 32개의 유료 신문이 발행되고 있다. ‘Morgenavisen Jyllands-Posten’(13만부), ‘Politiken’(11만 부), ‘Berlingske Tidende’(10만 부)가 전국적인 3대 일간지다. 지역 신문들 중에는 ‘Jydske Vestkysten’이 규모가 큰 신문이다. 2001년부터 ‘MetroXpress’ 등 무가지가 널리 배포되고 있다.

북유럽 신문 시스템의 특징은 무엇보다 신문의 수가 매우 많고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소수의 전국 신문과 다수의 지역 신문들이 공존한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본래 북유럽의 신문들은 19세기 말부터 매우 강한 정당 연계성 속에서 발전했다. 당시 사민당 등 주요 정당들은 모든 도시들마다 별도의 신문을 만들어 배포했고, 이들은 서로 경쟁을 벌이면서 독자층을 넓혀나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사회구조가 변동하고 시민들의 정당 일체감이 크게 줄면서 현재는 대부분의 신문들이 정당 연계성을 탈피한 상태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신문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신문 통폐합 등을 통한 거대 미디어 기업의 등장과 독점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구독 형태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인쇄 신문의 구독률은 여전히 높고, 정당 연계 신문이나 소수언어 신문도 신문지원 정책 등에 힘입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나라별 편차가 있지만 최근 북유럽 신문 산업의 변화는 단절보다 진화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기자협회보> 칼럼 바로가기: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840

2013년 7월 10일 수요일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의 미래를 생각한다

북유럽 언론 모델을 찾아서 <1>
[기자협회보 글로벌리포트| 북유럽]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연구원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출간된 것은 1949년이다. 당시 작가의 뇌리에 있었던 전체주의적 소비에트 체제들 대다수가 이미 몰락했다. 그러나 오늘날 첨단 정보화 기술 사회의 맥락을 타고 새로운 ‘빅 브라더’들이 출현할 가능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선 개입 사태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세계 뉴스의 중심은 단연 에드워드 스노우든(Edward Snowden)이 ‘가디언’ 등에 폭로한 미국과 영국 정보기구들의 광범위한 불법 감시와 정보수집 문제였다. ‘비동시성의 동시성’. 두 사건은 아주 다른 차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만 둘 다 오늘날 위기에 처해 있는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에 대한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6월 13일과 14일, 나는 핀란드 위바스뀔라(Jyväskylä) 대학에서 열린 ‘퀜틴 스키너 (Quentin Skinner)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오래 몸담아온 스키너는 서양 정치사상사 연구의 가장 탁월한 학자 중 한 명이자 위대한 현대 공화주의 정치철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핀란드 정치학자들과도 깊은 교류를 해왔는데 최근 핀란드 학술원 회원이 됐다. 심포지엄에서 스키너는 ‘자유의 계보학’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위 스노우든 사건에서 드러난 미국과 영국 정부의 행태와 태도를 강하게 비판한 뒤,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들의 사회는 지금 정말로 민주적인가?” “지금과 같은 자의적인 권력 행사와 지배의 조건 아래에서 우리는 정말로 자유로운 시민인가?”

홉스로부터 시작된 전통적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는 ‘외적 간섭이 부재한 상태’를 자유로 정의한다. 그러나 스키너 등 현대 공화주의 정치철학자들은 자유는 물리적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이며, ‘자의적 지배의 부재’야말로 자유의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아무리 자비로운 주인이라 하더라도 자의적 권력 행사의 가능성이 있는 한 그의 지배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즉, 노예다. 스키너가 특히 우려한 것은 노예가 주인의 처벌을 피하기 위한 기제로서 작동하는 자발적 복종, 곧 ‘자기검열’의 가능성이다. 정보 기술 체계의 급속한 발달과 정치-시민사회의 무기력을 상기하며 그는 현대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의 앞날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현실의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는 이러한 지배 추세를 막고, 진정한 차원의 시민적 자유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위 사건들의 경우 철저한 진상 조사와 공개, 책임자 처벌과 정책 전환, 제도적 재발방지 장치 마련 등이 일차로 요구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더욱 절실히 희구되는 것은 민주적 가치와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강력히 헌신해온 언론의 존재와 활동이다. 스노우든 사건에서 ‘가디언’이 수행한 역할과 국정원 사태를 왜곡, 은폐하는 데 사실상 동조해온 한국의 주류 언론들을 비교해보라.

물론 한국 언론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5년의 반민주적 퇴행에 더해 최근 일부 종편 채널의 5·18 역사 왜곡, KBS, MBC, YTN 등 주요 방송사들의 자체검열이나 국정원 개입 의혹, 한국일보 사주의 전횡과 노조 탄압 등 한국의 언론 상황은 총체적 위기에 가깝다. 언론의 자유도, 공공성도 모두 고사 직전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더불어 민주주의도, 시민적 자유도, 정치공동체의 미래도 좌표를 잃은 채 떠내려간다.

앞으로 이 지면을 빌려 북유럽의 미디어 시스템과 저널리즘의 특징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하려 한다. 신문 발행부수와 구독률, 미디어 다양성, 방송 공공성, 직업 전문성, 언론 자유 등의 지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북유럽 언론의 현황과 도전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13년, 참담한 한국의 언론 현실을 넘어서는 비판과 성찰, 상상과 재구성의 계기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자협회보 칼럼 바로가기]
=>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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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서 소개한 퀜틴 스키너 교수의 강연 사진을 첨부합니다. 이틀 내내 그의 바로 옆자리에서 세미나를 참관하며 몇 차례 그와 대화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빽빽한 일정 속에 많은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는데, 반듯한 자세로 앉아 끊임없이 경청하고 메모하며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스키너 교수의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모국어(영어)로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잘 안다는 말로 항상 인사말을 시작하는 그는, 모든 연구자들의 발표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내고, 고유한 장점을 격려하며, 때로는 후학들을 위해 고백에 가까운 자기성찰적 이야기들까지 기꺼이 들려주더군요. 학문적 공론장에서도 시민적 자유를 실천하려 노력해온 진정한 현대 공화주의자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최근 한국에도 퀜틴 스키너의 책들이 여러 권 번역, 소개돼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독서와 토론을 권합니다.
 
아울러 위 심포지움 참석차 방문한 위바스뀔라 대학과 도시의 풍경 사진도 몇 장 올립니다. 큰 호수를 면해 지어진 위사스뀔라 대학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150년 역사를 가진 이 대학에서 핀란드의 근대 교육학이 태동했는데, 지금도 대학의 학풍과 문화가 훌륭하다고 많은 참석자들이 말해 주었습니다. 
 
참고로 맨 마지막 사진이 "핀란드 초등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Uno Cygnaeus(1810-1888)의 흉상입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초등교육 과정에 수공예 교육(käsityönopetus, handcraft education)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위바스뀔라 대학은 그가 설립한 <핀란드 교사 세미나>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교사교육학과로 유명합니다.
 
그 밖에 조용한 토요일 아침의 시내 거리와 오래된 기차역 건물 등을 몇 장 사진에 담아보았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히 나시길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