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3일 화요일

선재, 초등학생이 되다!

 
2013813, 선재가 드디어 끼산마 초등학교(Kissanmaan koulu)에 입학했다. 어제 일찍 잠든 선재는 아침에 학교 가자고 깨우자 벌떡 일어나 엄마, 아빠의 칭찬을 담뿍 받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삼십여 년 전 아빠의 초등학교 입학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저도 왠지 기대감에 부풀어 잠들었던 모양이다.
 
씻고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선재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어제 오후 한 바탕 비가 내린 뒤 하늘은 더욱 맑고 푸르게 개었다. 바람도 선선한 것이 꼭 우리 가을날처럼 상쾌하다. 큰 나무들이 어우러진 숲길을 걷는데 예비학교(esikoulu)에서부터 절친하던 엘리아스를 마주쳤다. 기분이 더욱 좋아진 선재. 여름 방학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안부를 묻고 즐겁게 걸어간다.
 
학교엘 들어서니 빼곡히 들어찬 자전거들이 우리를 먼저 맞는다. 건물 근처에 모여있는 부모들과 어린이들 틈에 섞여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종이 울렸다. 2층에 있는 교실로 올라간다. 1학년에는 두 반이 있는데, 각 반에 스물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나뉘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인데, 여자애들이 두 배 가량 많다.
 
선재의 A반은 연세 지긋하신 여자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셨고, 또 한 분의 보조 선생님이 계셨다. 핀란드는 1학년 때 반이 정해지면 그 친구들이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대로 함께 올라가고, 선생님도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아이들의 삶에서 초등학교 입학 첫 날이 더욱 중요한 날이 되는 까닭이고, 이곳 부모들도 이구동성으로 “Jännittävä!”(얀니따바, 긴장돼! 혹은 떨려!)를 외친다.
 
특히,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 그리고 교사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은 핀란드 교육에서 선생님의 존재감과 역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6년 이상 함께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선생님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학습 상황, 나아가 가족 상황까지도 속속들이 알게 된다. 심지어는 학교 엄마”(koulun äiti)로 불린다고 한다. 지난 해 예비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훌륭한 역량과 태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초등학교 선생님과도 좋은 인연을 맺어 선재가 즐겁게 학교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교실 바깥 복도에 신발과 웃옷을 벗고 교실로 들어가 각자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유치원과 예비학교 과정을 마친 아이들은 새로운 학교 환경에도 쉽게 적응하는 모습이다. 선재를 비롯한 상당수의 아이들은 이미 같은 초등학교 건물에 있는 예비학교를 다녔던 터였다. 선재도 엘리아스와 나란히 맨 앞줄에 앉아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다. 선생님 책상에는 교과서로 보이는 핀란드 알파벳 책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교실은 빛이 잘 들어 환하고 아이들의 손 작품들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부모들도 교실로 따라 들어가 잠시 선생님 말씀을 듣는다. 이번 주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수업이 진행되며, 오늘 수업 후에 안내문이 나갈 거라는 이야기, 그리고 수업 끝난 뒤에 선생님과 자유롭게 상담하며 대화할 수 있다는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아이들과 간단히 눈인사를 한 뒤 부모들은 다시 바깥으로 나와 각자 발길을 돌렸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눈길로 아이들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하는 부모들,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학교를 나왔다.
 
첫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선재에게 수고 많았다, 오늘 어땠냐고 물었더니 짐짓 지친 표정을 지으며 힘들었어..” 그런다. 아무렴! 긴 방학 끝에 아침 일찍 학교에 간데다, 대부분 자유로운 놀이의 형태로 진행되던 예비학교와 달리 어쨌든 책상에 앉아 정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초등학교 생활이 어디 쉽겠는가! 여기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새로운 환경 변화에 스트레스를 겪는다니 아무래도 너는 더하겠지. 그래도 엄마가 사준 아이스크림 하나에 기분이 괜찮은 선재는 학교에서 받아온 핀란드어 교과서를 꺼내 보이며 왠지 뿌듯한 느낌의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선재는 다시 한 뼘, 키가 자랄 채비를 하고 있다.
 
'끼산마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끼산마는 우리 말로 '고양이 나라'라는 뜻이다) 

초등학교에서도 같은 반 친구가 된 단짝 엘리아스와 함께! 

교실 맨 앞줄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듣는 선재와 다른 친구들

선재가 받아 온 핀란드어 교재(Aapinen은 알파벳이라는 뜻) 

 'SUNJAE', 벌써 속장에 자기 이름도 써 놓았다!
 
책을 살펴보니 내용도 좋고, 그림도 참 예쁘다. 잘 배우렴~

2013년 8월 4일 일요일

하멘린나(Hämeenlinna) 여행기

오늘 땀뻬레에서 헬싱키 방향의 기차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하멘린나(Hämeenlinna)에 다녀왔다. 벌써 늦여름 기운이 느껴지는 핀란드의 8, 선재와 나의 방학 마지막 주를 추억하기 위한 한 나절의 짧은 여행. 기차를 내려 아름다운 호수를 돌아 30분쯤 걸어가니 그곳에 하메(Häme)의 성(Linna)’이 서 있었다.
 
이 성은 13세기 중엽 스웨덴의 2차 십자군 원정을 전후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정확한 설립 연대는 논쟁 중이라 한다. 중세 시대가 지나면서 요새로서의 군사적 역할이 줄어들었고, 1837년부터 1972년까지는 감옥으로 사용됐다. 현재는 역사적 기념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부터 박물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성 안에는 역사 박물관과 감옥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작년 여름에는 뚜르꾸 성(뚜룬린나, Turunlinna)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중세 유럽의 성 건축이 주는 여러 묘미에 감탄했는데, 하멘린나도 참 멋진 장소였다. 시원스레 펼쳐진 호수를 옆에 끼고 웅장하게 세워진 성곽, 높은 천장 아래 동굴처럼 어둑한 공간을 품고 있는 수많은 방들, 그 사이를 미로처럼 연결하는 좁고 꼬불꼬불한 통로와 계단들, 작게 낸 창문들 사이로 더욱 강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다발,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성의 안마당과 그 독특한 돌무늬, 붉은 성벽에 새겨진 하얀 상징과 문양들, 눈부신 태양이 굴곡진 성벽들과 만나 빚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미학, 3층 높은 방에서 내다보이는 사방의 아름다운 풍광들, 그리고 성 바깥의 풀밭 공원에 옷을 벗고 누워 여름 햇살과 호수의 바람을 즐기는 시민들까지...
 
성을 다 구경한 뒤 우리도 호숫가 나무 그늘 밑에 천을 깔고 누워 느긋한 오후 한 때를 보냈다. 집에서 싸간 핀란드산 귀리 샌드위치를 먹고 있으니 청둥오리들 한 무리가 얻어먹을 것이라도 있을 줄 알고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책을 보다가, 호수를 오가는 배 구경을 하다가, 까무룩 낮잠이 들었다.
 
, 한숨 잘 자고 눈을 뜨니 선재 혼자 뒹굴뒹굴 누워 책을 보고 있다. 그러더니 또 심심하다며 청둥오리들에게 다가가 풀을 던져주며 장난을 친다. 햇살과 바람, 나무와 새, 호수, , 아이들... 좋은 하루가 간다.
 
기차를 타고 다시 땀뻬레로 온다. 선재를 씻기고,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는다. 선재는 잠이 들고, 도시는 그새 어두워졌다. 여름의 끝자락이 되자 다시 밤하늘이 찾아왔고, 별도 다시 나타났다. 700년의 세월을 살아 낸 하메의 성을 만나고 온 날, 나는 세상과 접속하려 컴퓨터를 켜고 이 짧은 여행기를 쓴다.
 








































 

 
 
*추신.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지지하고, 한 여름 밤에 다시 촛불을 든 청계광장의 시민들을 응원한다. 민주주의가 제 자리를 찾고, 또 심화되길 염원한다. 모든 시민들이 느긋하게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 아름다운 도시 하멘린나를 소개하는 동영상 한 편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E01h1Is_bM
 
 

2013년 8월 2일 금요일

2013년 여름, 나의 핀란드어 배우기

6주 간의 핀란드어 집중 코스가 드디어 끝났다. 6월 중순부터 3, 7월 중순부터 다시 3, 매일 오후 약 4시간씩 땀뻬레 <여름 대학>(Kesäyliopisto, 어학을 중심으로 하는 핀란드 성인교육기관 중 하나)에서 진행된 긴 여정이었다. 코스를 마치고 받아 든 두 장의 ’Todistus’ (증서)에는 핀란드어 B 1.2 그리고 다시 B2~C1 등급의 과정을 이수했다고 적혀있다.
 

 
 
중급 후반에서 고급 초반 정도 되는 등급인데, 실제 실력은 아직 좀 들쑥날쑥 인 것 같다. 언어를 익히는 일에 끝이 있으랴 만, 그래도 이제 가파른 산 중턱의 능선을 하나 올라선 느낌이다. 점점 많은 것이 보이고 들리는, 상쾌한 여행길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핀란드어가 아닌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나 역시 몇 번의 깔딱고개를 지나왔고, 앞으로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안다.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핀란드어 자료와 논문, 책들 속에 파묻혀볼 계획이다. 핀란드 의회 의원들과 행정부 인사들,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의 인터뷰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여력이 닿는 한 내년에는 독일어와 스웨덴어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독일어는 예전에 공부했던 기억을 되살리면 핀란드어보다는 빨리 궤도에 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다음에는 같은 게르만어 계통에 속하는 스웨덴어도 시작하는 것이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한 해 두 해 꾸준히 익혀볼까 한다. 스웨덴어는 핀란드의 또 다른 공용어이기 때문에 배우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만사 제쳐두고 우선, 다음 주엔 선재와 함께 푹 쉬고, 많이 놀아줄 참이다. 아빠의 핀란드 어학 코스 덕분에 선재는 긴 여름 방학 내내 무척 심심했던 것. 8 13,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과 땀뻬레 주변 곳곳을 누비며 알차게 한 주 놀아보기로 하자. 참고로 이 어린이는 나보다 핀란드어를 더 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