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4일 일요일

하멘린나(Hämeenlinna) 여행기

오늘 땀뻬레에서 헬싱키 방향의 기차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하멘린나(Hämeenlinna)에 다녀왔다. 벌써 늦여름 기운이 느껴지는 핀란드의 8, 선재와 나의 방학 마지막 주를 추억하기 위한 한 나절의 짧은 여행. 기차를 내려 아름다운 호수를 돌아 30분쯤 걸어가니 그곳에 하메(Häme)의 성(Linna)’이 서 있었다.
 
이 성은 13세기 중엽 스웨덴의 2차 십자군 원정을 전후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정확한 설립 연대는 논쟁 중이라 한다. 중세 시대가 지나면서 요새로서의 군사적 역할이 줄어들었고, 1837년부터 1972년까지는 감옥으로 사용됐다. 현재는 역사적 기념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부터 박물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성 안에는 역사 박물관과 감옥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작년 여름에는 뚜르꾸 성(뚜룬린나, Turunlinna)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중세 유럽의 성 건축이 주는 여러 묘미에 감탄했는데, 하멘린나도 참 멋진 장소였다. 시원스레 펼쳐진 호수를 옆에 끼고 웅장하게 세워진 성곽, 높은 천장 아래 동굴처럼 어둑한 공간을 품고 있는 수많은 방들, 그 사이를 미로처럼 연결하는 좁고 꼬불꼬불한 통로와 계단들, 작게 낸 창문들 사이로 더욱 강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다발,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성의 안마당과 그 독특한 돌무늬, 붉은 성벽에 새겨진 하얀 상징과 문양들, 눈부신 태양이 굴곡진 성벽들과 만나 빚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미학, 3층 높은 방에서 내다보이는 사방의 아름다운 풍광들, 그리고 성 바깥의 풀밭 공원에 옷을 벗고 누워 여름 햇살과 호수의 바람을 즐기는 시민들까지...
 
성을 다 구경한 뒤 우리도 호숫가 나무 그늘 밑에 천을 깔고 누워 느긋한 오후 한 때를 보냈다. 집에서 싸간 핀란드산 귀리 샌드위치를 먹고 있으니 청둥오리들 한 무리가 얻어먹을 것이라도 있을 줄 알고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책을 보다가, 호수를 오가는 배 구경을 하다가, 까무룩 낮잠이 들었다.
 
, 한숨 잘 자고 눈을 뜨니 선재 혼자 뒹굴뒹굴 누워 책을 보고 있다. 그러더니 또 심심하다며 청둥오리들에게 다가가 풀을 던져주며 장난을 친다. 햇살과 바람, 나무와 새, 호수, , 아이들... 좋은 하루가 간다.
 
기차를 타고 다시 땀뻬레로 온다. 선재를 씻기고,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는다. 선재는 잠이 들고, 도시는 그새 어두워졌다. 여름의 끝자락이 되자 다시 밤하늘이 찾아왔고, 별도 다시 나타났다. 700년의 세월을 살아 낸 하메의 성을 만나고 온 날, 나는 세상과 접속하려 컴퓨터를 켜고 이 짧은 여행기를 쓴다.
 








































 

 
 
*추신.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지지하고, 한 여름 밤에 다시 촛불을 든 청계광장의 시민들을 응원한다. 민주주의가 제 자리를 찾고, 또 심화되길 염원한다. 모든 시민들이 느긋하게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 아름다운 도시 하멘린나를 소개하는 동영상 한 편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E01h1Is_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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