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일 수요일

2012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이야기 (3)

3. 1차 투표의 결과와 주요 특징
- 보수당 우위 속 녹색당의 선전, 사민당-좌파 블럭의 패배, 포퓰리즘 우파 정당의 부진, 여성 후보의 약세


이번 핀란드 대선에는 8개 정당의 후보가 출마했다. 유권자들은 18세 이상의 핀란드 시민들로 구성되며 약 44십만 명이다. 해외 거주 핀란드인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1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 간 부재자투표(Advance Ballots, 선행 투표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를 실시했고, 122()1차 투표가 실시됐다. 선행 투표에서만 백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참여하여 약 3분의 1가량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1차 투표의 최종 참여율은 72.8%(3,060,771명)로 지난 2006년의 대통령 선거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핀란드는 결선 투표 제도가 있어 1차 투표에서 과반수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후보를 가려 2차 투표를 실시한다. 2차 투표는 25()로 예정되어 있는데, 125일부터 31일까지 선행투표가 진행되었다. 1차 투표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면 21일부터 임기를 시작하지만, 2차 투표까지 가게 되면 대통령의 임기는 31일부터 시작된다.

이번 핀란드 대선에는 8개 정당의 후보가 출마했다.   2번이 녹색당의 Haavisto 후보, 6번이 NCP의  Niinistö 후보.

1차 투표를 집계한 결과, 보수당인 NCP(National Coalition Party)의 후보 Sauli Niinistö(63, )와 자유주의적 성향의 녹색당(Green Party) 후보 Pekka Haavisto(53, )가 각각 37.0%18.8%의 득표를 해 1,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나머지 후보들의 득표 현황을 살펴보면, 중앙당(CEN)Paavo Väyrynen 17.5%, 극우 성향인 핀란드인 당(FINNS)Timo Soini 9.4%, 사회민주당(SDP)Paavo Lipponen 6.7%, 급진 좌파 세력인 좌파동맹(LA, Left Allies)Paavo Arhinmäki 5.5%, 스웨덴 인민당(SPP)Eva Biaudet 2.7%, 기독민주당(CD)Sari Essayah 2.5%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투표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당의 Paavo Väyrynen 후보가 2위를 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녹색당의 Pekka Haavisto가 녹색당 후보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 결선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이는 핀란드 정치사에서 처음 발생한 사건으로, 1차 투표 이후 핀란드에서는 녹색당의 지지율과 기부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Haavisto 후보는 정부 각료에 참여한 세계 최초의 녹색당 출신 장관이었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EU 녹색당의 총재를 역임한 국제적 인물이다. 그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EU 특별 대표로 수단 내전의 다르푸르 평화 협상에 참여했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라이베리아 등의 분쟁 지역에서 UN의 환경 프로그램 미션을 지휘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2002년부터 에쿠아도르 출신 미용사 Nexar Antonio Flores와 법적인 동거 상태에 있는 핀란드 최초의 동성애자 대통령 후보이다. ,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학위를 마치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이 공식 학력이다. 녹색당 Haavisto 후보의 예상 밖 선전은, 그의 최종 당선 여부에 상관없이, 향후 핀란드와 서구 민주주의에서 녹색 정치의 성장 잠재력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녹색당 Haavisto 후보의 파트너인 Antonio Flores.

둘째, 사회민주당과 좌파동맹을 포함한 좌파 블록의 지지율이 급감했고, 이로 인해 좌파 진영에서 대통령 결선 후보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좌파 후보의 선택지가 배제된 채 보수당 후보와 자유주의적 성향의 녹색당 후보 간의 선택으로 치러지는 선거는 핀란드 현대 정치사에서 처음 발생한 사건이다.
특히, 핀란드의 사회민주당은 스웨덴의 동료들처럼 지배 정당의 위치는 아니었지만 선거에서 안정적으로 20% 중반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핀란드 3대 주요 정당(NCP, CEN, SPD)에 속한다. , 농민당(The Agrarian Party)과 중앙당(CEN) 출신으로 1956년부터 1982년까지 25년간 장기 집권했던 Urho Kekkonen 대통령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은 모두 사민당 출신 대통령들이었다.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Tarja Halonen 현 대통령도 사민당 출신으로 200031일부터 12년간 집권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사민당 출신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 또는 싫증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부터 사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았고, 이로 인해 지지층 일부가 녹색당 후보에게로 옮겨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마지막으로 에스토니아를 국빈 방문 중인 Tarja Halonen 현 대통령.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2000년부터 12년간 재직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최근 유럽 전역의 사회 민주당들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유럽 전역에서 중도 좌파 정권의 부활에 기여한 3의길노선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에 대한 수동적 적응 노선으로 비판받아온 가운데,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와 EU 국가들의 재정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와 실업률 증가 등에 대해서도 아직 뚜렷한 정치적,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이민 정책과 반()다문화주의를 내세워 대중적 지지를 늘려가고 있는 포퓰리즘적 극우 정당들의 행보 앞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해왔다. 이번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사민당 후보의 초라한 성적표는 핀란드와 유럽의 정치 지형에서 사민주의적 대안의 재구성이 시급히 필요함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지표가 될 것 같다.

셋째, 포퓰리즘적 민족주의 정당인 핀란드인 당(FINNS) 후보의 지지율이 지난 총선 때보다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 당의 후보이자 당수인 Timo Soini는 상당히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지난 2011년 총선에서 반 EU 정책과 이민 제한 정책을 내세워 20%에 가까운 지지율(19.1%, 39)을 받았다. 이는 보수당(20.4%, 44) 및 사민당(19.1%, 42)과 거의 대등한 지지율이었고, 보수당이 사민당, 좌파 동맹, 녹색당, 스웨덴 인민당, 기독민주당 등과 집권 연합을 결성하면서 핀란드인 당은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핀란드인 당은 주요 인사들의 잇다른 인종주의적 발언과 돌출적인 정치적 행동으로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했고, 이번 선거에서 지지율의 하락은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정한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핀란드인 당 후보가 획득한 9.4%의 지지율은 지난 총선보다는 낮지만 지난 대선의 지지율 3.4%보다는 월등히 높은 것이어서 이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앞으로 계속 하락할 것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그리스 등 EU 회원 국가들의 재정 위기 국면에서 핀란드가 완고한 협상 태도를 견지했고, 이로 인해 독일 등이 주도한 EU의 새 재정 정책이 핀란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됨에 따라 유권자들의 반 EU 정서가 누그러졌다는 분석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Guardian,  Finland's pro-euro candidates set to win presidential election, 2012.1.20.) 참고로, 1, 2위를 기록한 후보들은 모두 친 EU 성향의 후보들이다.

넷째, 여성 후보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여성 후보는 2명으로 스웨덴 인민당(SPP)Eva Biaudet와 기독민주당(CD)Sari Essayah 후보이다. 1차 투표에서 이들은 각각 2.7%2.5%의 득표율에 그쳤다. 이들 정당이 원래 핀란드 정치에서 소수당에 속하기는 하지만 이번 득표율은 지난 총선 때 이들이 얻은 4.3%4.0%의 득표율보다 낮은 수치이다. 이는 한 명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와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중시되는 총선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태도 차이를 한편 반영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 여성 후보들의 성별 정체성이 유권자들의 판단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현 대통령 Tarja Halonen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명성을 누렸던 점과 대비되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회적 현실과는 별개로 성별(gender) 이슈가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는 대중적 판단이 형성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스웨덴 인민당(SPP)Eva Biaudet은 보건사회부 장관과 소수자 인권 옴부즈만(Finnish Ombudsman for minorities)을 역임했고, 대학 학위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스웨덴 인민당은 주로 핀란드 서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측면에서 스웨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이들은 비록 소수파에 속하지만 오랜 동안 핀란드 정부의 집권 연합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풍부한 국정 운영 노하우를 갖추고, 핀란드 정치에 상당한 협상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스웨덴 인들의 언어, 인종, 종교, 지역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스웨덴 인민당(SPP) Eva Biaudet 후보.


기독민주당(CD)Sari Essayah는 모로코인 출신 아버지와 핀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말하자면 다문화가정 출신의 여성 정치인이다.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그녀가 보수적인 기독교 가치를 주창하는 정당의 대표라는 점이 우선 흥미롭다. 20대에 육상 경보 종목의 유럽 챔피언과 세계 챔피언이었던 그녀는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지방정부에서부터 경력을 쌓은 뒤 핀란드 의회와 EU 의회의 의원으로 활동해왔다. 핀란드 기독민주당은 보수당인 NCP의 기독교 분파가 분리되어 성립한 정당으로 유럽 대륙 국가들의 기독민주당과는 달리 소수 정당에 속한다.

이제 핀란드 대선은 결선 투표를 향해 가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NCP(National Coalition Party)Sauli Niinistö65%, 녹색당(Green Party)Pekka Haavisto35%의 지지율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상당한 격차가 있는 수치이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NCPNiinistö가 핀란드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될 전망이다. 그는 어떤 인물이며, 어떤 정책을 펼치게 될까? 연이은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 축소된 상태에서 그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며, 국민들에게는 어떤 정치인으로 남게 될까? 그리고, 녹색당의 Haavisto 후보는 얼마나 득표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결선투표에 진출한 그가 상당한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이는 향후 핀란드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계속 관심을 갖고 다음 주를 기다려보기로 하자.

핀란드 공영방송에 출연해 결선 토론을 벌이고 있는 Haavsto 후보와 Niinistö 후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