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7일 화요일

뚜르꾸(Turku)/오보(Åbo) 여행기 - 2. 뚜르꾸 여행에서 좋았던 것들(2)

다음날 다시 찾은 뚜르꾸 성. 이번에는 성문 안으로 아내랑 선재를 데리고 들어갔다. 안은 밖과 또 다르다. 외부 공간이 닫히자 그 안으로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바깥과 구분되는 하나의 분명한 질서가 높은 돌벽의 수직축과 너른 돌마당의 수평축이 만들어낸 입방체 속에 구현돼 있다. 성의 건물은 크고 작은 160개의 방과 좁은 계단들, 긴 회랑, 창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뚜르꾸 성 내부는 지금 뚜르꾸의 역사박물관으로 리노베이션되어 일반에 공개돼 있다. 돌계단과 회랑을 오르내리며 성의 방들을 하나씩 들러 유서깊은 뚜르꾸의 역사를 탐험했다. 왕의 홀(King’s Hall), 여왕의 홀(Queen’s Hall), 성 교회(Castle Church), 예배당, 감옥방, 객실, 기록실... 건축과 전시 모두 훌륭했고, 중세 복장을 한 안내인들도 친절했다. 인상깊었던 마지막 전시실의 모습. 온오프 라인의 다양한 게임에서 중요한 콘텐츠로 활용되는 뚜르꾸 성의 역사와 전설이 전시돼 있다. 의 사이클을 마감한 성은 이제 다시 부활해 새로운 삶을 맞이하고 있는 듯 보였다.
 
Fontana. 성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Fontana”라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 치즈버거와 파스타, 그리고 호가든 한 잔에 행복하다. 쾌적한 실내 공간과 적당한 가격. Good!
 
뚜르꾸 대성당(Turku Catheral). 다시 강변으로 나가 다리를 건넌다. 핀란드의 전설적인 육상 영웅 Paavo Nurmi의 동상을 뒤로 하고 뚜르꾸 대성당으로 간다. 강변에는 여름 햇살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즐겁게 어울려 논다. 즐비한 보트들. 맥주와 와인, 술은 참 많이 마신다. 우리도 잔디에서 잠시 쉬다 성당으로 진입. 가까이서 보니 성당의 규모가 상당히 큰데, 뚜르꾸 성처럼 소박하면서도 장대한 건축 양식이 마음에 든다.
 
성당 내부도 아름답고 웅장하다. 예배당 앞 천장과 벽에 여러 점의 성화들이 그려져 있어 선재에게 대강의 의미를 설명해주니 호기심있게 잘 듣는다. 공간이 주는 울림과 경건함. 건축과 예술이 인간 문명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생각해본다.
 
성당 입구와 바깥 공원에서 발견한 미카엘 아그리콜라(Michael Agricola)의 흉상과 전신상.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교수로 있었던 독일의 비텐베르그(Wittenberg)에서 공부한 아그리콜라는 1554년 뚜르꾸 루터리안 교회의 첫 주교로 임명된 뒤 핀란드에 종교개혁의 물결을 일으킨 인물. 오늘날 핀란드인 85%가 복음주의 루터리안 교회(Evangelican-Lutheran Church)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핀란드 근대사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최초의 핀란드어 알파벳 책과 핀란드어 성경을 펴내는 작업을 통해 핀란드어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대성당을 배경으로 서 있는 아그리콜라의 전신상 앞에서 선구자적인 예지와 깊은 신념을 간직한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틀 동안 아빠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 다니느라 힘들어하는 선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 뒤 두 팔로 안고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강변의 흥성스러움은 성당을 경계로 잦아들고, 성당의 뒤쪽 공간은 고요하고 차분하다. 바로 뒤에는 <핀란디아>를 작곡한 핀란드 현대 음악의 아버지 쟝 시벨리우스(Jean Sivelius) 박물관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뚜르꾸 대학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아름다운 뚜르꾸 시립도서관.
 
셋째날 오전,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뚜르꾸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시립도서관을 여행 일정에 넣은 이유는 사실 땀뻬레 시립도서관이 참 예쁘고 훌륭해서 다른 핀란드 도시들의 도서관들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뚜르꾸 시립도서관은 그 이상이었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일요일에도 12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여는 도서관. 12시 전부터 도서관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서관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하나씩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놀라운 풍경은 나이 지긋한 장년과 노년의 시민들이 회랑의 긴 통로 좌석을 하나씩 차지하고 신문들을 가져다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일요일 낮 12시에 도서관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넓은 책상들을 가득 메우고 앉아 무슨 취미라도 되는 양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보는 사람들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신문 구독률을 자랑하는 핀란드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신문을 읽는지 짐작할 만 했다.
 
우리는 안내 데스크에 문의해 짐을 맡긴 뒤 선재를 데리고 어린이 도서 코너로 갔다. , 이렇게 예쁠 수가! 넓은 서고에 어린이 책들과 다양한 콘텐츠들이 가득한 가운데 알록달록한 실내 소품들과 넓은 마당이 내다보이는 통유리가 화사하기 그지없다. 선재는 도너츠 모양의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나는 도서관 구경을 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
 
넓고 밝은, 모던한 느낌의 공간 구성, 풍부한 책과 자료를 소장한 주제별 서고, 곳곳에 책읽기 좋은 책상과 소파들, 어디라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다 갔으면 싶었다. 저널 코너에 갔더니 주제별, 분야별로 핀란드와 해외의 저널이 가득 전시돼 있다. 멋진 카페와 조각 작품이 있는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소파에 앉아 ‘History Today’라는 잡지를 펴 들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 잡지는 전문적인 역사가들이 다채로운 주제로 글을 기고하는 계간지였는데, 내용이 퍽 깊이가 있으면서 흥미로왔다. 20세기 초기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시기의 중국 상하이의 거리 풍경이 오늘날 지구화된 자본주의 경제의 떠오르는 심장부가 된 21세기 상하이의 거리 풍경까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조명한 글을 읽으며, 도서관의 분위기 속으로 잠시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신관을 벗어나 구관으로 간다. 아주 우아한 건축 양식의 구관은 1903년에 설립됐는데, 원래 1818년부터 뚜르꾸 총독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2007년에 신관이 완공되면서 구관도 2008년 재건축되어, 지금은 문학, 음악, 미술 분야의 책과 자료들을 전문적으로 소장한 예술 도서관으로 기능한다. 입구에서 발견한 19세기 핀란드의 민족 시인 요한 루트비히 루네베르그’(Johan Lutvig Runeberg, 1804-1877)의 흉상. 그는 핀란드의 시골 풍경을 서사적으로 묘사하고, 러시아와 맞서 싸우는 핀란드인의 영웅성을 노래해 핀란드의 낭만적 민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통과 현대, 과학과 예술, 세대와 세대가 조화를 이룬, 참 아름다운 뚜르꾸 시립도서관. 이런 도서관을 가진 시민들의 안목과 역량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여행에서 돌아가면 땀뻬레 도서관의 매력도 다시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가다. 도서관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선재에게 배를 타고 인근 섬으로 들어가 물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던 터라 다시 도서관을 나와 선착장으로 향했다. Vepsä라는 섬까지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강의 하구와 항구를 지나 너른 마당 같은 뚜르꾸 앞바다의 풍광을 만끽했다. 조그만 섬에 내려 맛있는 피자로 점심을 하고 백사장 해변으로 가 선재랑 물놀이를 즐겼다. 수영장을 몇 번 다녔더니 그새 선재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듯 물 속에서 잘 논다. 잔잔하고 얕은 바다에 몸을 담그니 동해와 통영과 제주, 우리 바다의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마지막 배를 타고 돌아나올 때 마침 뚜르꾸 항으로 들어오는 ‘SILJA LINE’의 큰 크루즈 여객선을 만났다. 작은 섬 하나보다 커 보이는 엄청난 여객선을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구경하는 행운이라니! 여행의 마지막 대미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