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9일 목요일

뚜르꾸(Turku)/오보(Åbo) 여행기 - 3. 여행의 성찰, 여행의 지혜


아오는 기차 안의 독서와 사색. 짧고도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선재는 잠이 들고, 나는 해 저무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집에서 가져간 버르란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Bertland Russell, The Conquest of Happiness, Routledge, 2009)을 꺼내 한 챕터를 읽었다. 여행을 갈무리하기 참 좋은 글. 그의 통찰력있는 문장들이 숨을 고르게 한다. 줄을 그으며 읽은 몇 문장.
 
“Cynicism... results from the combination of comfort with powerlessness. Powerlessness makes people feel that nothing is worth doing, and comfort makes the painfulness of this feeling just endurable.”(p.103)
 
“The pleasure of work is open to anyone who can develop some specialised skill, provided that he can get satisfaction from the exercise of his skill without demanding universal applause.”(p.104)
 
“Companionship and cooperation are essential elements in the happiness of the average man, and these are to be obtained in industry far more fully than in agriculture.”(p.106)
 
“This is a complete mistake; any pleasure that does no harm to other people is to be valued. For my part, I collect rivers: I derive pleasure from having gone down the Volga and up the Yangtse, and regret very much having never seen the Amazon or the Orinoco.”(p.107)
 
“Fundamental happiness depends more than anything else upon what may be called a friendly interest in persons and things.”(p.107)
 
“But all this must be genuine; it must not spring from an idea of self-sacrifice inspired by a sense of duty. A sense of dusy is useful in work, but offensive in personal relations.”(p.108)
 
그리고 여행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여행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목적은 우선 새로움의 발견이다. 좋은 여행이란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새로움이란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새로움이란, 그것이 없다면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구분되지 않고, 삶이 생기를 잃고 진부함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무엇이다.

새로움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쉽게 낯선 타자를 발견한다. 낯선 도시, 낯선 언어, 낯선 얼굴, 낯선 풍광, 낯선 생태, 낯선 음식, 낯선 모든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행지에선 나 자신이 하나의 이방인, 곧 타자가 된다. 스스로 타자가 되어보기. 이를 통해 그 동안 내게 익숙하고 편안했던 것들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며, 우리를 구속하고 얽어매는 것들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여행에서 만나는 새로움은 안팎에서 우리를 두드린다.
 
또한, 여행은 몸의 경험이자 놀이이다. 새로움의 발견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조용히 묵상하거나 좋은 강의를 듣거나, 벗들과의 즐거운 대화를 통해서도 온다. 여행과 이들 활동의 공통점이다. 여행이 다른 점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몸을 놀게 한다는 것 아닐까? 심미적 놀이와 체험을 통해 살아있음자유를 느끼는 과정, 이를 통해 삶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사유성찰로 나아가는 과정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새로움의 발견, 심미적 놀이와 체험, 살아있음과 자유를 느끼기, 사유와 성찰. 내가 생각해본 여행의 목적이자 여행의 본질이다. 이것이 없다면 무언가 여행다운 여행이라 하기는 어렵다.

박경리 선생은 외국 여행 한 번 나가보지 않고 <토지>를 완성했다고 한다. 한반도를 넘어 중국 만주와 상하이, 일본 동경을 넘나드는 대작을 쓰면서 정작 현지답사조차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상상력을 제약할까 싶었다는 것이다. <토지>가 완간된 지 한참 지나 1990년대 중반에 만주 일대와 중국 여행을 하신 선생은 당신이 자료를 보고 상상했던 것과 똑같았다고 하셨으니, 정말 그이는 한 자리에 앉아 천리 밖, 만리 밖을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을 지녔던 것이다. 그런 심미안을 가진 분이었으니 만약 선생이 우리처럼 해외여행을 자유로이 하셨더라면 어떤 여행기들을 남기셨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무튼, 선생의 삶과 말씀을 떠올려보면 늘 여행의 허상을 경계하게 되고, 여행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 시대의 여행은 트렌드로, 패션으로, 상품으로 소비된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0년대 말 이후 핵심유럽패키지투어동남아단체관광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들의 여행은 산티아고 순례길제주 올레길여행으로까지 진화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여행에 나서는 우리들 다수의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적 소비와 자기현시를 위한, 스펙으로서의 여행이다.
 
남들이 가보라고 한 곳은 반드시 가야하고, 남들이 맛있다고 한 것은 꼭 먹어야 하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선 사진부터 찍고 보는 여행.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도 해봤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무의식의 충동으로, 이곳에 다녀갔다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으로... 아직도 우리들의 여행은 이와 같은 패턴을 맴돌기 십상이다.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순수한 자유와 기쁨의 순간을 그렇게 헌납해버린다.
 
솔직히, 나 또한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느꼈다. 반성한다. 그러므로 좋은 여행이란 내 안에도 도사리고 있는 오래된 관습, 그리고 또 하나의 문화적 소비 욕망과 단호히 결별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다가올 여행의 지혜로 삼을 만한 나 자신의 지침을 여기 적어둔다.
 
욕심을 버릴 것. 여하한 강박에서 자유로울 것.
사진을 더 적게 찍을 것. 사진보다 먼저 눈으로, 마음으로 사물의 빛을 깊게 바라볼 것.
일정에 여백, 틈을 둘 것. 마음에 들면 언제, 어디서든 오래 머무를 것.
소비를 줄일 것. 예산 범위 내에서 악센트있게 소비할 것.
아이의 눈높이에서 여행할 것. 가족, 친구와 함께 여행할 때는 자기 욕구를 상당히 포기할 것. 좋은 친구와의 여행은 그 자체로 최고의 가치가 있음을 명심할 것. 대신, 아침·저녁에 잠시 혼자 시간을 가질 것.
사람들의 실제 삶을 느껴보고, 현지인들과 자주 대화해 볼 것.

* 아래는 뚜르꾸 시립 미술관에 전시된 핀란드 화가들의 그림들 중 마음에 들었던 것들이다. 미술관 안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안 되기 때문에, 이 사진들은 내가 사온 엽서들을 다시 찍은 것이다. 그런데 엽서만 보고 있어도 참 좋다. 여행 중 선재의 즐거웠던 순간도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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