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3일 수요일

2. 뻬쩨르부르그와 레닌그라드 사이에서

 

- "2014년 여름, 러시아 썅뜨 뻬쩨르부르그 여행기"

 
 
(1) 핀란드 역에 도착하다
 
핀란드 역’(Финляндский вокзал, Finlyandsky vokzal)은 우리가 도착한 샹뜨 뻬쩨르부르그의 역 이름이다. 뻬쩨르부르그에는 두 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하나는 핀란드 헬싱키 방향으로 떠나는 핀란드 역이고, 다른 하나는 모스크바 방향의 기차가 떠나는 모스크바 역이다. 특이하게도 두 역 사이엔 철로가 없이 단절돼 있고, 그 가운데로 네바(Neva) 강이 흘러 발틱 해의 핀란드 만에 닿는다. 네바 강에는 많은 다리가 놓여 있고, 이들이 한여름의 백야 시간대에 들어 올려지는 풍광이 큰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그 중 기차가 지나는 철로 다리는 없는 것이다. 모스크바와 헬싱키, 러시아와 유럽 문명은 그렇게 이어진 듯 단절된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핀란드 역이란 기표가 우리 귀에도 친숙한 것은 러시아의 붉은 혁명가 레닌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Vladimir Ilyich Lenin, 1870-1924). 20세기 초반 차르와 그의 비밀경찰의 탄압을 피해 핀란드와 스웨덴을 거쳐 제네바, 파리, 런던, 취리히 등에 머물며 망명 활동을 벌이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1917년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발생하자 귀국을 결심한다. 독일 정부의 지원으로 비밀 열차를 타고 독일을 통과한 뒤 배로 스웨덴까지 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191733, 마침내 당시 개명된 페트로그라드(Petrograd, 피터의 도시라는 뜻의 뻬쩨르부르그를 독일식 이름에서 러시아식으로 고쳐 부른 것. 당시 러시아는 독일과의 전쟁 상태였다.)의 핀란드 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모여든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는 것으로 활동을 재개한 그는 그해 10월 무장한 볼셰비키 당원들을 동원해,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임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혁명을 실현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쿠데타에 가까운 행위였고, 이후 러시아는 약 3년여의 내전 상태에 돌입한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결국 내전에서 승리한 레닌과 그의 정부는 이후 70년간 지속된 러시아 소비에트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고, 그 사이 수도는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그러나 거듭되는 암살 시도 와중에 가슴에 맞은 총상이 남긴 후유증으로 레닌의 건강은 악화됐고, 결국 1924124일 사망했다.
 
그의 사망 이후 뻬제르부르그는 다시 레닌그라드(Leningrad, 레닌의 도시라는 뜻)로 이름을 바꾸었고,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은 히틀러의 나치 체제와 함께 20세기 최대의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한다. 감시와 테러, 투옥과 고문, 집단학살과 강제이주로 점철된 전대미문의 공포의 시대가 전개되면서 수많은 러시아인들과 러시아에 거주하던 소수집단 및 외국인들, 그리고 소련 연방을 구성하던 소수민족들에게 행해졌다. (만주 북동부의 러시아 영토에 거주하던 한인 공동체도 이때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집단 이주돼 큰 희생을 치렀다.) 
 
테러의 시대이후 찾아온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소련은 비록 전승국에 속했지만 약 27백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한,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국이었다. 소련을 침공한 독일은 약 900일 간 레닌그라드 봉쇄’(Leningrad Siege)를 단행했고, 이 때 레닌그라드는 인구의 절반이나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잃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나 자신, 여행을 앞두고 뻬쩨르부르그에 관한 책자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서 새삼 20세기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했던 러시아인들의 운명이 아프게 다가왔다. 20세기 세계사적 격변의 한 시발점이 된 그 핀란드 역에 나도 도착한 것인가, 잠시 감흥에 잠긴 채 기차에서 내렸다.
 
 
(2) 낯선 나라 러시아의 첫 인상
 
 
멀리 역사와 기차를 배경으로 선재의 사진을 한 장 찍고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가니 곧장 거리가 나타났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 도로 옆으로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 길 건너 낡은 버스 정류장, 낯선 러시아어 간판들과 안내 표지들, 직선적이고 획일적인 소련식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로 가느냐고 달라붙는 택시 기사를 뿌리치고 바지 속의 지갑과 휴대폰에 신경쓰며 빠른 걸음을 했다. 예상했던 것과 아주 다른 풍경 앞에서 어디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가늠이 쉽질 않았다. 택시를 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고, 거리 위로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다.
 
건물의 긴 블록을 왼쪽으로 끼고 도니 핀란드 역의 정면과 광장이 나타났다. 인도에 주변지도가 새겨진 안내판이 서있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작은 대합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렵사리 ‘i’ 표시를 발견하고 창구엘 가서 호텔 주소를 보여주며 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런데 아뿔싸, 창구에 앉은 노년의 여성은 영어가 되지 않았다.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센터가 아니라 일반 러시아 승객들을 위한 안내소였던 모양이다. 어쩌랴, 몸 언어를 활용해 소통을 시도했더니 지도 한 장 내주지 않으면서 손짓으로 길을 건너가 메트로를 타라고 했다. 낭패였다.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한 장소라 당연히 여행 안내센터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거기서 지도와 교통은 물론 주요 여행 정보를 얻을 요량으로 영문 가이드북조차 집에 두고 온 터였다.
 
그나마 여행오기 전에 러시아어 알파벳과 발음을 익히고 온 것이 큰 다행이었다. 거리의 간판과 지명을 띄엄띄엄이나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이리 된 것, 몸으로 부딪쳐야겠다 싶었다. 역 바깥으로 나온 뒤 주변지도 판을 다시 살펴보면서 아내와 상의를 했다. 본래는 인포센터를 들러 트래블 카드를 사고 현지 여행 정보를 얻은 뒤 호텔로 갈 계획이었는데, 일단 역 광장에 유명한 레닌 동상이 있으니 그걸 보고 호텔을 빨리 찾아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길을 건너 광장으로 갔다. 붉은 색의 작은 트램들이 교차로를 돌고 있었다. 80년대부터 운행했을 법한 트램의 색은 하얗게 바래 있었다. 움직일 때는 덜컹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런데 광장 주변으로 경찰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교차로에서 교통을 정돈하는 하늘색 제복의 경찰들만이 아니라 광장과 거리 군데군데 서 있거나 천천히 배회하는 짙은 군청색 제복의 경찰들이 있었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한다기보다 그저 건달처럼 둘씩 서서 잡담하거나 지나가는 시민들을 관찰하는 것이 업무인 것처럼 보였다. 21세기의 러시아는 여전히 경찰국가인 것인가, 그런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실제로 우리 앞에서 나이든 아버지와 함께 가벼운 차림으로 걸어가던 서양 젊은이가 검문에 걸렸다. 시무룩한 표정의 젊은 경찰이 밝은 상의에 반바지 차림의 그를 붙들고 신분증을 요구하는 장면을 마주쳤다. 약간 당황한 듯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여권을 꺼내던 청년의 얼굴을 지나쳐 우리는 광장으로 들어갔다.
 
 
(3) 레닌 동상 앞에서의 상념
 
화사한 인공 꽃밭과 대형 분수대를 지나니 멀리 네바 강이 보이고, 그 앞으로 큰 청동조각 위에 한 사내가 강 건너편을 향해 오른 팔을 쭉 뻗은 채 서있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얼굴을 쳐다보았다. 약간 대머리에 뚜렷한 이목구비, 양복 재킷 위에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무장한 차량 위에 올라가 우뚝 서 연설하는 그는, 레닌이었다. 그 뒤로 핀란드스키 레일웨이 스태이션이 눈에 들어왔고, 다시 보니 동상의 허릿춤에 모자가 찔러 넣어진 것이 보였다. 번뜩이는 천재와 강철같이 단호한 의지를 겸비한 당대의 혁명가다운 형상이었다. 19172월 혁명 직후에 핀란드 역에 도착해 긴 여행의 피곤함을 잊고 군중들 앞에서 포효했을 레닌의 모습이 그대로 연상됐다.
 
어느덧 그로부터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가 수립한 소비에트 공화국은 혁명의 이상을 배반한 채 테러와 독재, 무능과 부패의 상징이 되어 무너졌고,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시대를 거쳐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선거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한 러시아는 KGB 출신으로 신흥재벌 올리가르히(Oligarch)를 대표하는 인물과 그의 친구들이 새로운 영구지배를 꿈꾸는 정치체제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푸틴과 그 측근들이 샹뜨 뻬쩨르부르그 출신이라는 것이다.
 
만약 레닌이 총상의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그의 사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달라졌을까? 그의 사상이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적 요소들을 진지하게 수용했더라면, 종교와 예술과 인류의 문화적 삶의 양식에 대해 덜 폭력적이고 포용적 관점을 취했더라면 사태가 달라졌을까? 새로운 세기, 러시아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소련 몰락 이후 23년이 흘렀지만 아직 핀란드 역 앞에 건재하게 서 있는 레닌의 동상을 보면서 두서없는 생각들이 구름처럼 일었다.
 
, 한 가지 이야기가 남았다. 이 레닌 동상은 지난 2009년 어느 봄날 새벽에 누군가 설치한 사제폭탄이 터져 허리 뒷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사건을 겪었다. 지금 동상은 2010년 레닌 생일에 다시 원상 복원된 것이라 한다. 문화적 반달리즘(vandalism)의 표출로 비난받을 수 있는 행동이지만, 다른 한편 레닌으로부터 비롯돼 스탈린의 전체주의 체제로 귀결된 소비에트 시절의 유산에 대해 지긋지긋해 했을 많은 이름없는 러시아 시민들의 원성도 귀에 들려오는 듯 하다. 책을 보니, 뻬쩨르부르그 시내 모스크바 광장에 있는 레닌 동상은 이미 소비에트 시절부터 경찰의 눈을 피해 지속적으로 어떤 무명씨들에 의해 양쪽 눈알이 번갈아 파내지는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당국이 복원해놓아도 소용이 없어 금세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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