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8일 금요일

80년 광주의 기억과 2012년, 세계의 ‘5.18들’

1.
5월이구나. 5.18, 빛고을 광주의 상처와 기억의 힘. 그 속에 87년의 뜨거운 여름이 잉태돼 있었지. 그러나 그 날 이후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거꾸로 가는가? 많은 사람들이 꿈꾸었던 민주주의도, 인권도, 평화도, 공동체도 지금 위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위기를 타개할 진짜 희망과 대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의 고뇌를 더 깊게 하는 요즘 세월이다.
 
2.
작년부터 이어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시민혁명들, 그리고 시리아 사태. 민주주의와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리아 민중들의 항의와 이들에 대한 알 아샤드 대통령의 거리낌없는 무력 공격을 보면서 나는 19805, 우리의 광주가 겪었을 두려움과 분노, 고립과 희생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석유 자원을 소유한 리비아 내전에 대한 NATO의 공습이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면서, 정작 시리아 사태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반인도주의적 범죄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즉각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은 뒤늦게 UN 안보리를 통해 시리아 제재안을 추진했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에 부딪쳐 표류했다. 뒤늦게 안보리 제재안이 통과되고, UN 전 사무총장 코피 아난을 특사로 한 UN의 평화 중재 노력이 전개되고 있지만(핀란드도 UN의 시리아 평화유지단에 전문 인력들을 파견시켰다), 그 동안 시리아의 상황은 너무 많이 악화돼 있다고 한다.
 
3.
지금 아랍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고난과 어려움, 그리고 시민혁명 이후의 이집트 상황에서 보듯이 민주화 이후에도 이들이 걸어야 할 숱한 가시밭길과 정치적 혼란, 시행착오와 미숙함의 여정은 우리의 경험을 반추해볼 때 충분히 자명한 사실로 예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우리들이 세계시민으로서 무언가 함께 연대하고 손 내밀 수는 없을까? , 지금 급진적인 변화와 개혁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분열과 갈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경험으로부터 어느덧 만족한 중간계급의 민주주의 상태에 정신적으로 안주해온 듯한 우리 사회가 다시 배우고 성찰할 점은 없을까? 이와 같은 일이 반드시 국제연대를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나 몇몇 인권 활동가들만이 고민해야 하는 영역일까?
 
광주와 5.18을 아프게 기념하면서도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5.18'을 아직도 먼 나라의 일로만 여기고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우리들. 그리고, 터질 듯 비좁은 한반도의 남쪽 구석에 웅크린 채 당권파니 비당권파니, 부정선거니 부실선거니, 당비대위니 당원비대위니 다퉈야 하는 처지의 진보정당.
 
이것이 어쩌면 오늘날 세계화되었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의 한 자화상이 아닐까? 사실 시리아 사태의 평화적 중재와 해결 노력을 최종 책임지고 있는 반기문 UN 사무총장마저도 외교관료적 수사와 형식적인 유감 논평을 뛰어넘는, 세계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신장을 향한 신념있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적은 없는 것 같다.
 
4.
이렇게 세상이 굴러간다는 것에 대해 솔직히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한국 사회의 표면적인 성장과 뭉뚱그려진 지표상의 성취들 이면에 우리 사회 내면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또 누가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참으로 어렵고, 그래서 종종 괴롭기까지 하다.
 
현 집권세력과 재벌, 보수언론, 대형교회, 사학재단 등 '뼛속까지' 사익 추구 정신과 왜곡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듯한 한국의 보수 지배세력에게서 그러한 변화와 개혁의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마저 민주적 선거 절차를 '관행적'으로 위반하고, 집단적 폭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정당화하며, 자신들이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는 오직 '당원 동지들'이라고 강변할 때, 그럴 때 여전히 대한민국의 민주적 변화와 진보적 공동체를 꿈꾸는 시민들에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한국엔 진정한 보수도, 진정한 진보도 아직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는 우리가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가깝도록 제대로 된 정치적 선택지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니,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과연, 안철수 현상이 달리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5.
이제는 정말 형식과 관성을 넘어, 우리가 표방해온 막연한 가치와 이상들에 대해 나의 몸과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하나하나 되묻고 재구성해가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크고 작은 정치적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제시되는 영혼없는논리와 자기기만적 정당화를 중단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오늘의 세계를 넓고 깊게 통찰하고, 새로운 사고와 정치적 상상력, 창조적 문제해결능력을 함께 길러가며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며, 평화적인 대한민국, 그리고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이다.
 
이번 12월의 대선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중도든, 정치적 비전과 가치, 정강과 정책, 조직문화와 감수성 모든 면에서 ....” 제대로 내실을 갖춘 정치세력이 승리하고, 이를 통해 향후 한국 사회의 담대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배출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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