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5일 화요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하다: 풍경과 단상

2012년 5월 15일 오전 10시, 드디어 프랑스 사회당의 올랑드(Hollande)가 대통령에 취임했다는 뉴스. 엘리제 궁에서 사르코지 부부를 배웅하고 헌법 준수 서약을 한 뒤 대통령 취임 연설을 했다. 이로써 프랑스에서는 17년만에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취임 연설에서 올랑드는 재정 적자, 저성장, 높은 실업률, 유럽 재정 위기 등 프랑스가 당면한 험난한 도전들을 직시하며, 모든 역량을 동원해 대응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성장 전략을 통해 유럽연합의 '새로운 길'(new path)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또, 공정하고 정의로운 프랑스, 사회적 연대의 가치와 문화, 품위있고 양심적인 리더십을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쏟아지는 비 속에서 개선문 광장으로 차량 시가 행진을 하며 시민들을 만났다. 19세기 교육개혁가 쥘 페리(Jules Ferry) 기념관과 위대한 과학자 마리 퀴리의 기념관을 들러 시민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그는, 교사의 대규모 충원과 질 높은 훈련 기회 제공 등 교육 환경 개선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할 것임을 역설했다.

그리고는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건너가 독일의 메르켈 수상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궂은 날씨에 올랑드를 태운 대통령 전용기가 이륙 직후 벼락을 맞는 바람에 급히 회항하여 두 번째 비행기로 갈아타고 날아갔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철렁했을 이 뉴스를 보도하며 언론들은 프랑스와 유럽연합이 당면한 험난한 현재 상황, 그리고 이날 정상회담의 맞상대인 메르켈과의 첨예한 입장 대립과 갈등을 예고하는 듯 하다고 해석했다.

올랑드와 메르켈은 오늘 처음 만났다고 한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은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머물기를 바라며, 유럽연합의 미래를 위해 함께 일해 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하는 메르켈 앞에서 올랑드는, 향후 (독일이 금기시하는) 유로본드(Eurobonds) 등 모든 의제를 테이블 위에 올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긴축에 방점이 찍힌 유럽연합의 재정 협약에 성장의 차원을 추가하기 위해 재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메르켈이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큰 이견이 없음을 강조하며 둘 사이의 뚜렷한 입장차를 수사적으로 봉합하려는 자세를 취한데 대해, 올랑드는 유럽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시각을 대변하여 새로운 유럽연합의 정치경제적 경로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적극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어제 독일의 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보수 기민당과 메르켈 총리의 입지는 한층 줄어들었는데, 바야흐로 메르켈-사르코지 동맹 축이 무너지면서 유럽연합의 정책 기조와 방향이 크게 변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뉴스 화면과 사진으로 본 행사 풍경에서 느낀 몇 가지 단상을 추가한다. 엘리제 궁에서 거행되는 프랑스의 대통령 취임식은 흡사 입헌군주제의 대관식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요소가 있어 흥미로웠다. 개선문 광장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거센 빗줄기를 그냥 맞으며 손을 흔들고, 차에서 내린 뒤에는 인도에 환영하러 나온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올랑드의 모습에선 'Mr. Normal'(보통 사람)로 불리는 이 지도자의 시민친화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그러나 취임식 날 바로 독일로 건너가 정상회담을 전개하는 발빠른 행보에서는, 심각한  재정 위기의 한 복판에 놓인 그리스가 각 정파의 이해관계 차이로 결국 정부구성에 실패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한 가운데 프랑스와 유럽연합이 갖고 있는 긴박한 위기 의식이 느껴진다.

또, 취임식 직전 전임 대통령 사르코지와 30분간 따로 회동하면서 핵무기의 발사 코드를 승계했다는 보도를 접하니 프랑스가 핵강대국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한 사람의 수중에 저와 같은 엄청난 대량살상무기의 최종 발사 권한이 주어진다는 현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프랑스의 심각한 교육 불평등, 그리고 소외 계층과 이민자 가족 청소년들의 사회 통합 위기에 대해 교사 6만명을 충원하는 등 대대적인 교육 지원 정책을 통해 접근하고 있는 올랑드와 사회당의 대담한 전략이 매우 인상적이다. 2005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방리유 사태가 보여주듯, 프랑스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노동 정책이 불러온 심각한 교육 불평등과 청년 실업에 더해 국가적 정체성과 사회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적 이민-문화-치안 정책이 결합되면서 상당히 권위주의적이고 배제적인 사회로 퇴행하는 조짐을 보여왔다. 대규모 신규 고용에 따른 국가의 재정 부담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사민당)이 견지해야 할 바람직한 정치적 가치와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접근을 결합시킨 노력으로 생각된다.

한참 논문을 쓰던 중이라 몇몇 뉴스와 신문 기사(BBC, Guardian, Le Monde, France24 등)를 참고해 간략히 정리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과 사회당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색과 유럽연합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 국가 및 정치세력들의 대응 방향 등에 대해 계속 팔로우업을 해보기로 하자.

엘리제 궁의 취임식 


빗 속의 파리 시가 행진 


개선문 앞에 도착한 올랑드 대통령 


시민들 속으로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하는 올랑드와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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