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일 금요일

[최장집 칼럼]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2)

 
3.
선생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 가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한 그의 통찰에 귀 기울여 보자. 첫 칼럼이었던 장위동 봉제공장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이렇게 진단한다.

봉제 산업이 적지 않은 고용을 흡수하고 도시 서민가구의 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에도, 이 부문의 기업주-노동자들은 정부의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세금도 없고, 보험도 없이 공적 제도 밖에 존재하는 얼굴 없는 사회경제적인 집단이다......(중략) 봉제 공장이 밀집한 이 지역에서 정당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뷰에서도 그들은 선거철을 제외하고는 평상시에 정치인들이 공장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정당과 정치인들도 이들과 의사소통이나 접촉을 시도하지 않는다. 전국적인 정당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지역구의 정치인 차원에서도 지역구 내에 있는 이들 사회경제적 인구 집단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은, 정치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 정당의 사회적 기반 없이 민주정치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2011.8.22. 경향신문)

아동복을 제작하는 한 봉제공장 내부 전경(출처: 구글 이미지)

 
그는 또 새벽 4, 가을 공기가 차가운 성남의 인력시장을 찾아 전국적으로 57만 명에 달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몇 사람을 인터뷰한 뒤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이들에게서 민주주의는 무엇이었나? 나는 새벽의 인력시장에서 정치와 정당 일반의 부재는 물론이고,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진보정당의 부재 역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그리고 여러 운동 단체에서 내세웠던 화려하고 추상적인 진보적 구호들과 담론들이 이 현장에서는 아무 흔적도 갖지 못했다. 이들 노동자들의 존재를 의식한 산업-고용정책, 외국인 노동자정책, 주택정책, 교육정책은 없었다.”(2011.9.26. 경향신문)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기다리는 일용직 노동자들(출처: 구글 이미지)
 

그의 발길을 계속 따라가 본다. 이마트가 들어선 뒤 급격한 매출감소로 위기에 빠진 공덕동 재래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대화한 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의 과도한 영향력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 이들에 의해 변형된 국가 관료제와 여론매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대기업의 독점적 영향력으로 인해 파괴된 시장경쟁과 효율성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에 있다. 한마디로 말해 중소기업과 소매업체들의 경제적 활력을 복원시키는 일은 단순한 온정적 조치가 아니라 한국경제와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문제라는 것이다. 총선,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들 모두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중소기업과 소자영업자, 노동자와 같은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대표의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 이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자율적 결사체를 강화할 수 있는 기반 없이, 대기업·정부관료·주류언론의 유착을 제어할 수 있을까? 사회적 힘의 관계를 더 넓게 다원화하는 작업 없이, 정당들이나 정치인들이 무정형의 여론매체 위를 둥둥 떠다니며 공허한 개혁 언술을 남발하는 것으로 과연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2012.1.30. 경향신문)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출처: 오마이뉴스)
  

황폐해진 농민, 농업 문제를 고민하며 농민운동 활동가들을 만난 뒤의 칼럼에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이 빛난다. 좋은 질문은 그 속에 이미 좋은 해답의 실마리를 품고 있는 듯하다.

농촌이 이토록 피폐화된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 수 있을까? 농업의 붕괴 위에서 산업 발전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농촌의 피폐와 농업의 붕괴는 방치되어 왔을까? 농민들의 요구와 불만은 왜 정책으로 수용되지 못했을까? 농민이 지역적으로 산재해 있어 조직화되기 어렵다는 점도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정당체제가 노동자나 농민, 중소기업, 자영업자와 같은 생산자 집단들의 이익을 두고 경쟁하기보다 폐쇄적인 지역갈등 구도에 얽매어 있었다는 데 기인하는 바 크다. 지난 10년 동안만 해도 농업인구가 22%나 급감해 이제는 겨우 300만 명밖에 안 되는 열세 집단이 되었다는 점도 정당들이 그들에게 다가갈 유인을 줄이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단절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농업·농민 문제가 우리 사회의 중대 문제로 다시 논의될 수 있게 될까?”(2012.2.27. 경향신문)
 

비정규직 청년 노동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청년유니온을 찾은 그의 칼럼은 이렇게 시작된다. 세 명의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의 이력과 노동 조건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다.

총선을 앞둔 지금, 필자는 두 가지 의문을 갖는다. 하나는 복지나 재벌개혁과는 달리 비정규직 문제는 왜 중대 쟁점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젊은 세대의 노동문제는 누가 대표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근 나는 하급 서비스직 부문에서 시급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청년유니온조합원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종필씨는 피자 배달 일을 했다. 유사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은 높았지만 오토바이 사고 위험이 컸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고, 청년유니온 1기 조직팀장을 지냈다. 서유란씨는 해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네일아트 기술을 배울 학원비를 충당하고자 대형마트 안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는 시급 노동자였다. 이번에 청년유니온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수민씨는 신용정보사의 정규직 직원이다. 120~130만원의 급여로는 부족해 퇴근 후 집근처 커피가게에서 일주일에 4, 저녁 8시에서 새벽 1시까지 월 40~45만원의 추가 수입을 위해 일을 한다. 현재 청년유니온 홍보팀장이다. 대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청년유니온 창설에 참여했던 김형근씨는 24시간 편의점에서 주 3일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야간근무를 했다. 현재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듣는 청년유니온 이야기는, 내게는 무척 생소하면서도 매혹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2012.3.26. 경향신문)
최저임금 인상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출처: 청년유니온)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인 이주노동자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주노동자와 고용주, 지원단체 등에 대한 현장 취재를 두루 마친 뒤 그는 문제와 갈등을 회피하지 말고 실질적인 정책-제도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뭐든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직설 속에 많은 것이 함축돼 있다.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복지체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외국인노동자도 자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사관계가 개선돼야 한다. 그것은 사용자단체와 노조가 나설 일이다. 외국인노동자 보호입법도 필요하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피해서는 안된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노동자 유입을 개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일정한 제한이 없을 수 없겠지만, 고용주의 신원보증을 통해 고용허가를 연장해주는 제도를 도입할 수는 있다. 이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은, 외국인노동자 청원을 전담 처리하는 지역노동위원회나 노동법원을 설치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부문이나 3D업종에서는 외국인노동자의 공급을 더 원하는 반면, 건설업에서는 내국인노동자의 고용기회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것 역시 업종별 고용쿼터제를 두거나 노조와 사용자단체 간의 협의를 통해 풀어갈 수 있다. 뭐든 안 되는 것은 없다. 외국인노동자의 합법화를 위한 제도개선은 중요하다. 이 문제가 정책적 필요에서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도덕적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2012.4.23. 경향신문)
 

2회에 걸쳐 전국적으로 300만에 달하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깊이있게 파헤친 최근 칼럼에서는 최근 심각한 전사회적 이슈가 돼온 통합진보당 사태와 연관지어 이렇게 결론내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정치적 대표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잘못된 이념적 급진주의에 의해 주도된 진보정치가 민중의 권익 증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민주주의 그 자체에 해악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명히 보고 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신용불량자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첫째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포함하여 금융정책을 실제로 다룰 수 있는 당의 제도와 조직체계를 조직하는 일이다. 이는 관련 이해당사자 집단, 예컨대 신용불량자, 비정규직 노동자, 복지수혜 대상자, 청년 등이 정책 이슈 제기에서 아젠다 형성, 정책 대안 마련에 이르기까지 보다 더 가까이 참여하거나 접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당 활동의 체계가 달라지는 문제를 말한다. 당의 조직과 역할은 시민의 실생활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업에 부응할 수 있도록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고서 진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실제 사태를 못 보게 만드는 역기능이 될 수 있다.(후략)”(2012.5.18. 경향신문)

한림대 김순영 박사가 신용불량자 문제를 파헤친 책 <대출 권하는 사회>의 표지 사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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