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일 금요일

[최장집 칼럼]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3)

4.
 
민주화 이후 25, 그러나 세금도, 보험도 없이, 공적 제도의 바깥에서 얼굴없이 살아가는봉제공장의 영세사업주에게, 기업주는 물론이고 정규직 노조마저 적대하고 외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게으른 복지수급자로 낙인찍히거나 복지서비스의 사각지대에서 끝없는 불행을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빈곤층 서민들에게, 이윤 추구만을 앞세우는 대기업의 권세와 횡포 앞에서 순식간에 생존권을 위협받는 재래시장의 상인들에게, 이른 새벽 찬 공기만 마시다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인력시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국가의 체계적인 농업 포기 정책 속에서 갈수록 피폐해지는 농촌 주민과 농민들에게,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전부터 비정규 노동과 반실업 상태로 내몰리며 미래를 꿈꿀 권리마저 부정당하는 젊은 세대에게,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상에서 상시 인권침해 가능성에 노출돼있는 이주노동자에게, ‘대출 권하는 사회가 구조적으로 강요한 신용불량의 딱지와 그 트라우마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300만 명의 인구에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이었는가?


나는 최장집 선생의 칼럼들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향한 그의 고뇌에 찬 음성을 듣는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왜 우리의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은 실제적인 시민들의 삶의 현장을 찾지 않는가? 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애로와 호소와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가? 왜 이들의 이해관계와 의견을 정치적 공론장으로 이끌어내고, 관련 당사자들과 그 대표들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려 하지 않는가? 왜 현장으로부터 정책을 도출하지 않는가? 정당들은, 특히 진보정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기본적인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채 제도로서 의회와 정당의 총체적 위기와 쇠퇴를 말하며 이들의 기능을 서둘러 폐기처분하려는 조급한 경향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를 최장집 선생은 되묻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와 제도권 정당의 위기를 말하기 전에 아직 제대로 된 정치적 대표 시스템과 정당 정치조차 갖고 있지 못한 미발전의 민주주의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신생 민주주의와 의회-정당은 이미 100, 200년의 역사적 성장과 완숙기를 지난 뒤 새로운 도전에 직면에 후퇴 혹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서구의 그것과 결코 동일한 상태가 아니다.
 
 
물론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작동하는 만큼, 수많은 새로운 도전과 위기를 우리도 함께 공유한다. 자본주의 지구화와 탈산업사회적 정보화 시대의 도래, 전지구적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녹색 정치의 도전, 인권·평화·젠더·생태 등 새로운 사회적 의제의 확산과 질적 민주주의의 요구, 국제이민의 증가와 다문화사회로의 전환, 더 많은 자치와 참여를 요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 확대 등. 이 모든 새로운 도전들은 근대 시민혁명과 주권적 국민국가, 산업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에 기초해 성립된 현대 대의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에 중대한 변화의 압력을 불어넣고 있다. 2008년의 촛불집회와 최근의 나꼼수 현상처럼 우리 사회에서 더욱 빠르게 실험되고 확산되는 정치문화적 현상도 분명히 감지된다. 더욱이,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역학의 변동은 우리에게 동아시아의 평화적 질서 구축과 남북한의 미래지향적 통일을 향해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탁월한 정치적 지혜와 실천이성을 요구하고 있다.
 
나도 이러한 진단에 동의한다. 안정기를 지난 근대 민주주의가 처한 다층적 위기와 질적인 전환 양상을 살펴보고, 대안적 정치 질서 경희대 김상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미지의 민주주의’ (김상준, 미지의 민주주의, 2011, 아카넷) 의 내용과 형식을 탐색하는 것은 나에게도 핵심 관심사이며, 내가 지금 핀란드까지 와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된 중요한 동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서구의 의회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는 그들 사회에서 여전히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 집단적 이해관계 및 의견의 형성 및 대표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한 사회적 갈등 및 문제 해결 과정의 핵심적 제도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많은 진보적 학자들과 시민들이 바람직한 모델로 상정하는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들도 잘 들여다보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의회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가 시민들의 삶에 깊이 밀착되어 운영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들은 입법과 정책 형성 과정에서 관련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객관적이고 철저한 연구 조사, 그리고 모든 이해당사자 그룹들의 의견 수렴과 넓은 참여를 바탕으로 대안적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합의적 의사결정 모델을 발전시켜왔다. 이들 국가가 높은 정치적 대표성과 민주적 책임성을 구현하고, 나아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신뢰를 유지해온 비결이다.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인 참여 민주주의와 숙의(심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도 근대적 형태의 대의 민주주의와 완전히 새로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이를 관계론적, 시민사회론적 지평에서 재해석하고 급진적으로 보완하는 흐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한 세기 동안의 고투 끝에 도달한 한 지점으로서 현 단계의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그 내실을 다져가는 가운데, 새로운 도전과 위기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5.
 
지난 5월초에 한국에서 핀란드를 찾아온 한림대 김순영 박사와 대화하다 그이가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신용불량자 문제를 천착해 책까지 출간한 전문가이며(김순영, 대출 권하는 사회, 2011, 후마니타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부터 오랫동안 최장집 교수를 도와 일해 온 것을 알게 됐다. 실제로 신용불량자를 주제로 한 이번 두 차례의 칼럼에서는 그이의 연구와 조언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지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 때 김순영 박사와 대화하던 중 최장집 선생이 이 칼럼 쓰는 일이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두려 한다는 말씀을 전해들었다. 나는 깜짝 놀라, 지금 선생이 쓰시는 이 칼럼은 정말 훌륭하고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작업이니 부디 힘을 아끼셔서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해주시길 바란다는 독자로서의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고령의 선생이 이 칼럼을 언제까지 쓰실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부디 오랫동안 경향신문에서 그의 칼럼을 볼 수 있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함께 읽고, 우리 정치가 대표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그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의 글에서 자신의 존재이유와 존재방식을 발견하는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특히 경직된 이데올로기와 추상적인 거대담론 속에서 구체적 현실을 외면한 채 낡고 좁은 골방에 갇혀있는 진보정치세력이 진정한 혁신의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설령 선생이 칼럼을 조만간 그만 쓸 수밖에 없더라도, 그와 같은 정신과 자세로 단련된 많은 시민들이 제대로 된 정치평론과 정책입안, 나아가 책임있는 정치적 대표로서의 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전개해가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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