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18대 대선 소감 1 - '힐링'에서 '성찰'로!

대선이 끝났습니다. ‘멘붕겪으신 분들 많을 텐데, ‘힐링은 다 되셨나요? 역사를 길게 보면 한 번의 선거라는 것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지난 5년의 세월이 워낙 재앙이었던 데다 박근혜 후보 뒤에 어른거리는 유신독재의 이미지가 겹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한 많은 시민들에게 이번 선거는 절박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울과 낙담을 털고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역사는 비틀거리면서 전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외부에서 원인을 구하지 말고, 남 탓부터 하고 보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고, 더 밝아진 눈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핀란드에서 바라본 한국의 18대 대선,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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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 알려진 내용이지만 기록의 차원에서 일단 팩트부터 정리해봅니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다. 20121219,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75.8%로 최근 세 번의 대선 가운데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선거는 아주 치열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문재인 후보가 48%의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박근혜 후보는 51.6%의 지지를 얻는 박빙의 승부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세대별 투표 성향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두드러졌다.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는 문재인 후보를 더 선호했고, 50대 이상의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를 더 선호했다. 특히, 인구 고령화에 따라 40대 이상의 유권자가 증가 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90%에 가까운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한 50대가 박근혜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 점이 박후보의 당선에 가장 기여한 중심 요인으로 분석됐다. 지역 변수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서울과 호남에서 선전했지만 박근혜 후보는 인구가 많은 영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강원, 제주, 충청권에서 이기고 인천과 경기에서마저 우세한 득표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후보는 서울에서 박근혜 후보를 단지 근소한 차이로 이겼고, 야당의 강세가 예측되던 경기, 인천에서마저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서 다른 지역의 열세를 만회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
 
많은 질문과 고뇌를 안겨준 이번 대선,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외신들이 전하는 대로, ‘독재자의 딸이 민주적 절차(선거)를 통해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 역사적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개 정치학자들은 그것도 민주주의다”, 나아가 그것이 민주주의다라고 말할 텐데, 이번 선거 결과에 비판적인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는 차마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지난 5년간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파탄에 가까운 실패가 널리 인정되고,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에 대한 대중의 높은 열망이 거듭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총선에 이어 야당이 또 다시 무기력한 모습으로 패배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실망과 우울을 겪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물론 48%, 1469만표의 지지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에 너무 낙담만할 결과는 아닐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오히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가 채택해온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 의회 선거가 강요하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의 정치구조로 인해 이러한 민의가 정치적 대표 체계 속에 균형있게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이 상기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모델로 삼아온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훨씬 합의 지향적 민주주의(consensual democracy)를 운영하고 있는 유럽의 다수 국가들처럼, 이제 우리 사회도 비례대표제도의 전면 도입에 기초한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을 포함해 개헌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선거라는 것은 언제나 돌발적 변수와 예측불가능한 요소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특정한 요소나 오류에서 사태의 근본 원인을 찾는 행태는 나약한 심성의 인간이 사후약방문을 찾는 격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요. 예컨대, 50대의 높은 투표율과 이들 다수의 박근혜 지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풍부한 정책과 관점을 마련하고 이를 호소력있게 재구성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겠지요. , 이정희 후보의 막말과 토론 태도 자체가 50대의 이반을 불러왔다기보다는 - 물론 그도 큰 원인을 제공했겠지만- 이를 적절히 제어하고 또 훌쩍 뛰어넘는 토론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문재인 후보의 한계가 더 문제였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3.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면,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모두 토론과 연설 능력에서 현 단계 한국 사회가 요청하는 민주적 정치지도자의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한국 현대사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운명의 크기 앞에 성실했던 그의 인생역정과 훌륭한 인간적 성품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치열하지 않더군요. 힘없는 시민들이 겪는 고통과 좌절에 대해, 지난 정부의 실정에 대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길과 이제 새롭게 열어갈 정치적 비전에 대해 그가 말할 때 더 정밀하면서도 명쾌하게, 갈구하는 시민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처음 기대했던 것에 비해 막상 정치적 공론장에 나타난 그의 태도나 언어가 너무 유아적인 듯해서 놀라고 실망했습니다. 그가 내놓은 새 정치의 구상이나 이른바 새로운 형식의 유세라며 진행하던 모습에서도 문제의 실질에 가 닿은 내용이나 메시지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강조해온 것처럼 공감과 소통 능력은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아주 중요한 미덕이자 기술이지만 무엇을, , 그리고 어떻게 실천하고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과 설득 없이 동화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것에 참 의아하더군요.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행태도 아름답지 못한 것이었지만, 안 후보는 결국 자기 한계, 곧 정치 세계에 대한 미숙한 사고와 내용적 준비 부족으로 인해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야권 후보의 정치적 미숙함은 단지 후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당 체제의 허약함과 직결된 문제일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민주당을 잘 살펴보면, 분명한 정강정책을 가지고 공유된 정치적 이상을 위해 정치활동을 벌이는 현대적 대중정당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정치적 야망을 꿈꾸는 개인 명망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의 정치적 이상이나 정책 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활동의 구심으로서 정당 조직의 발전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부르주아 정당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너무 박한가요? 부디 그런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 가운데 누구라도 앞으로 대권 도전을 포기하고 10, 20년 뒤 민주당을 완전히 시민사회 속에 뿌리내린 새로운 정치조직으로 만들 포부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요? 미안한 말이지만, 1219일 저녁 민주당사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주요 인사들의 면면 속에서 저는 그러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안철수 후보와 그 캠프 또한 모호한 새 정치담론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대중의 정치 불신과 혐오 정서에 편승해 반()정치적 수사와 급진적 대중주의(radical populism)에 가까운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또 다른 한계에 직면했다고 보입니다. 만약 안철수씨가 암중모색 뒤에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한다면 의회와 정당 정치, 민주적 국가운영 등에 대해 명료한 자기인식과 질적으로 달라진 비전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일부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이정희 후보의 언변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기준에서 본다면 그녀 역시 결코 토론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성찰이 결여된 그녀의 재빠른 말들과 (그가 누구이든)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선적 태도는 80년대 운동의 패러다임에 갇혀 어느덧 몰락해가는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을 고스란히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토론 역량에 대해서는 굳이 장황한 평가가 불필요할 듯 합니다. 다만,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 미달에 가까운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은 15년 이상의 정치적 여정 속에서 정제된 측면이 있고, 그녀의 지지자들에게는 충분한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한심한 토론 룰과 주류 언론의 불공정한 보도 덕을 많이 보았지만요.)
 
4.
 
사실 우리 사회는 뛰어난 연설과 토론 역량을 단지 화려한 정치적 언변과 수사로 착각하거나 일종의 위선적 포장 정도로 여겨 등한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는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관행적 인식을 이제 분명하게 재고했으면 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강조했듯, 인간의 공적 인격은 말과 행위로 드러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더 명확하고 사려깊으며 일관성있는 사유와 언어 행위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 예외적 사례일지 모르지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가 하나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요? 물론 미국을 포함해 서구의 현대 민주주의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정치인들이, 나아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꾸준히 갈고 닦아야할 민주주의의 기술(arts of democracy)을 우리는 쉽게 건너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될 때가 많습니다.
 
화려한 수사와 치열한 논쟁을 즐기는 미국과 정치문화가 많이 다르지만, 이곳 핀란드에서도 인상깊은 것 중 하나는 유명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남녀노소의 일반 시민들, 심지어 아주 어린이들까지 가령 TV 화면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한다는 점입니다. 잘 확립된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시민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린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전통과 토론 문화, 평등한 사회의 질, 국가 권력과 언론과 시민의 수평적 관계 등이 그 배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득권을 점하고 있는 상대의 문제점이나 선거 과정의 돌발 변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우리 자신의 태도와 준비된 역량입니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나 선거가 끝난 뒤에나 여전히 더 핵심적이고 중요한 차원에는 진지한 관심과 노력을 쏟지 않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새삼 친노반노로 갈려 대선 패배 책임의 공방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이 여실히 이쪽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식이라면 3년 뒤, 5년 뒤에도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어 더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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