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2일 수요일

[기자협회보 칼럼] 대처, 이코노미스트, 북유럽 모델

잘 지내시죠? 핀란드에도 다시 봄이, 아니 여름이 찾아왔네요. 해가 아주 길어졌고, 한밤 중에도 푸르스름한 여명이 머물러 있어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참 아름답습니다. 나무와 꽃과 풀들은 어찌나 빨리 잎을 돋우고 키를 늘리는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갈 때마다 놀랍니다. 한철 장사하는 사람의 분주한 심사를 닮은 듯도 해서 혼자 웃습니다. 긴 겨울 끝에 만난 여름 햇살을 최대한 누리려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호숫가와 잔디밭, 맥주펍의 야외석까지 햇빛 드는 곳은 어디든 웃옷을 훌훌 벗고 자유와 평화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네요. 어쩌면 이 또한 자연의 일이구나 싶습니다.

지난 2월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이 인연이 되어 <한국기자협회보> '글로벌리포트' 란에 칼럼을 쓰게 됐습니다. 북유럽 관련 이슈와 현황을 소재로 해서 6주에 한 번 꼴로 글을 쓸 예정입니다. 오늘 첫 칼럼이 나갔네요. 이번 글은 최근 있었던 대처의 죽음과 <이코노미스트> 북유럽 특집호가 던지는 시대적 함의를 논한 것입니다. 사건 모두 지난 세대를 지배했던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북유럽 연재를 시작하는 칼럼의 소재로서도 좋은 출발점을 제공하는 것 같아 글로 써보았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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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이코노미스트, 북유럽 모델


[글로벌 리포트 | 북유럽]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연구원
2013년 05월 22일 (수) 15:29:15

2013년 4월8일, 영국의 전 총리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사망했다. 정치가 대처의 삶과 행적에 대한 세계 언론의 다양한 평가가 쏟아졌다. 특히 영국 사회는 이를 둘러싸고 여론이 심각하게 분열된 양상이다. 영국의 경제를 재건하고 국제적 위상을 제고한 인물이라는 주류 언론의 평가에 대해 복지국가와 노조를 해체하고 극단적 시장주의 정책을 펼쳐 결국 오늘의 심각한 불평등과 위기를 불러왔다는 평가가 맞섰다. 역사의 공정한 평가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터이다. 그러나 레이건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주창했던 대처의 죽음과 이를 둘러싼 영국의 분열 현상은 그 자체로 지난 한 세대의 패러다임이 끝났음을 알리는 강력한 상징처럼 느껴진다.

지난 2월 발간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특집호는 이미 그 전령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북유럽 나라들:다음 슈퍼모델”(Nordic Countries:The next supermodel)이라는 제하의 이 특집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thinking the unthinkable)” 창조력의 중심이 30년 전 대처의 영국에서 오늘의 스웨덴으로 옮겨졌다고 선언한다. 잡지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시장 경쟁력부터 사회적 건강과 행복 지수까지 두루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고 있으며, 나아가 투명성과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경쟁 자본주의와 ‘큰 국가’의 장점을 결합해 좌우를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잡지에 따르면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관대했던 복지국가 시스템을 개혁하고 사적 시장의 원리를 복지 서비스에도 일부 도입해 경쟁력과 사회통합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덴마크는 가장 유연한 노동 시장과 개방적 무역 정책을 갖고 있으면서도 높은 고용 안정성과 복지 수준을 유지한다.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이다. 핀란드는 신뢰와 안정에 기초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교육 시스템을 일구었다. 이 나라는 노키아 신화와 ‘앵그리버드’의 로비오(Rovio)로 이어지는 혁신기술 경제의 모델이기도 하다.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로 부국이 된 노르웨이는 전통적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고수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에 가까운 노르웨이를 흥미롭게도 최근 중국이 모델로 삼고 있다.

물론 오랫동안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적 사회경제 관점을 옹호해온 잡지답게 이번 특집호도 최근 북유럽 국가들이 연금과 복지 수당을 개혁하고, 교육과 의료 등에 일부 시장 요소를 도입한 사례를 중점 부각한다. 평등과 성장이 함께 가능한 북유럽 경제 모델의 바탕에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합의와 여전히 강력한 노동운동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의 비판적 정치평론지 ‘디센트 (Dissent)’의 온라인 비평에서 죠셉 슈와르츠(Joseph M. Schwarts)가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처의 죽음이 상징하듯이 이번 ‘이코노미스트’ 특집호는 탈규제, 민영화,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 노조 탄압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이 한 시대를 지배했던 패러다임으로서 이념적 대의와 실효를 잃었음을 웅변하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나아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진화된 보편적 복지국가와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바탕으로 여러 방면에서 가장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는 북유럽 국가들의 잠재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교육, 디자인 등 ‘북유럽 모델’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뜨겁다. 그러나 어떤 모델이든 고유한 배경과 맥락, 역사적 형성과 변천 과정이 있다. 깊은 성찰과 오랜 실천 없이 북유럽의 성취를 이룰 길은 없다. 특히 지금처럼 ‘갑의 횡포’가 만연한 한국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그냥 내버려둔 채 북유럽 따라잡기가 도대체 가능할까?

‘이코노미스트’의 돌연한 북유럽 찬가와 대처의 죽음. 현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흐름을 지켜보면서 북유럽 사회에 대한 우리의 논의가 한 단계 진화하길 기대한다.

[한국기자협회보 원문 링크]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112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HELSINGIN SANOMAT 읽기 - 핀란드 의회와 시민 발의 제도

1.

오늘 드디어 핀란드의 대표적인 일간신문 <Helsingin Sanomat>를 읽기 시작했다. 1889년 핀란드가 아직 러시아 대공국의 지위에 있던 시기에 <Päivälehti> ('일간신문'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간된 이 신문은 핀란드의 독립과 언론 자유를 옹호하다 러시아 제정의 압력으로 1904년 일시 폐간된뒤, 1905년 현재의 이름으로 재창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약자를 따 HS, 또는 애칭인 Hesari('헤자리')로도 불리는 이 신문은 핀란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신문이다. 하루 평균 40만부 이상을 인쇄하며, 그 중 97 퍼센트가 정기구독의 형태로 가정에 배달된다. 핀란드는 물론 북유럽 국가 전체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한다. 2013년 1월 6일부터 판형이 변경돼 타블로이드판으로 발행되고 있다.

나도 오늘부터 정기구독을 신청해 아침에 받아든 신문을 연구실로 가져가 하루 종일 인터넷으로 단어뜻을 찾아가며 기사를 읽었다. 기사 하나를 읽는데 백 개가 넘는 단어를 검색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핀란드어를 배운 지 일년 만에 신문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보람있다.


2.

한 기사는 특히, 나의 논문 주제와 밀접히 관련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갖고 읽었다. 핀란드 민주주의 사상 처음으로 '시민 발의'(Citizen's Initiative, Kansalaisaloite)가 성사되어 의회에 제출된 것을 의회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시민 발의'란 최근 의회 중심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보완, 혁신하기 위해 서구 여러 나라에서 실험적으로 도입해 온 심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적 제도들 - 시민 합의 회의, 시민 배심원 제도, 심의 공론 조사, 시민 의회 등 - 중 대표적인 유형이다. 인구의 일정 비율이 넘는 수의 시민 서명이 있는 발의안을 의회에서 심의하도록 함으로써 시민 주도의 공적 의제 설정을 허용하고, 의회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시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1년 핀란드도 시민발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6개월 이내에 5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경우 이를 의회에 제출하여 공식 심의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이번에 처음 발의된 시민 발의는 핀란드에서 동물 모피 산업을 금지하자는 안으로 시민 7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문제는 시민 발의안이 의회에 제출된 뒤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하고 세부적인 기준과 절차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핀란드 의회(Eduskunta) 의장인 Eero Heinäluoma (SDP, 핀란드 사민당)는 이번 시민 발의가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민주주의적 혁신 사례라며 높이 평가했지만, 정작 의회 사무를 관장하는 Seppo Tiitinen 사무총장은 지난 화요일 Helsigin Samonat와의 인터뷰에서 의회가 시민발의안을 반드시 다루어야할 법적 의무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Tiitinen 총장의 발언에 대한 비판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회 의장단이 원내교섭단체들과 함께 시민 발의안이 의회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질 것인지를 정하는 문서를 마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현행 의회 운영 절차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시민 발의안은 의회에 제출된 뒤 본 회의에서 예비 토론을 거친 뒤 의장이 정하는 적절한 상임위원회로 이관돼 심의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의회의 심의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상임위원회(Valiokunta)가 시민 발의안을 소홀히 다루거나 단순히 부결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발의안의 옹호자들은 현행 헌법과 의회 운영 규칙에서 의회에 제출된 시민 발의안은 의원 100명이 서명한 입법 발의안과 비슷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우선순위와 중요성이 의회 심의 과정에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Tiitinen 사무총장 같은 이들은 시민 발의안의 심의와 결정에 관한 권한은 전적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대의 기관인 의회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1906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보편적 선거권을 도입하고, 1907년 실시된 첫 의회 선거에서부터 여성의 피선거권을 포함한 온전한 참정권을 보장한 나라답게 핀란드는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오랜 의정 활동 경력을 가진 엘리트 정치인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Tiitinen의 발언에는 의회의 의사 결정 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대한 시민 참여의 기회를 획기적으로 넓혀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한 이들 엘리트 정치인들의 마뜩찮은 심기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쟁의 결과 시민 발의안에 대한 의회의 심의 절차와 의사 결정 방식이 정해지면 향후 시민 발의 제도의 운영 방향과 그 효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충실한 대의 제도의 틀을 유지하려는 기성의 흐름과 새로운 심의 민주주의적 실험을 추진하는 혁신의 기운이 교차하는 가운데 핀란드의 의회가 어떤 길을 선택할 지 주목된다.


  • Helsingin Samonat 2013년 3월 13일판. 지난 1월부터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바뀌어 발간되고 있다.
 

  •  왼쪽 상단은 EU의 한 싱크탱크의 보고서에서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통과하면서 핀란드의 평판이 EU의 '모범생'에서 독단적이고 근시안적인 '문제아'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는 기사이다. 핀란드는 그리스 금융 지원 방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물질적인 담보를 요구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 오른쪽 기사와 사진은 최근 이탈리아 총선 결과 이후 독일의 일부 경제학 교수들이 아예 EU 통화연합 폐지를 주장하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을 창당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유로 위기가 독일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제목. 


  • 갑자기 불어닥친 3월의 대설과 한파로 프랑스, 독일, 벨기에, 영국 등 중서부 유럽 국가의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진과 기사. 


  • 최근 의회에 제출된 첫 '시민 발의'안을 두고 의회 내 심의 절차와 의사 결정 방식을 둘러싼 논쟁을 소개하고 있는 기사. 위 사진 속 인물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Seppo Tiitinen 의회 사무총장이다.
  •  

2013년 2월 18일 월요일

핀란드 복지국가의 풍경

한림대 정치경영연구소의 제안으로 <프레시안>(2013.2.18.)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1년 이곳에 정착하며 보고 느낀 핀란드 복지국가의 풍경을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그 동안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연구하느라 따로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틈나는 대로 다시 핀란드와 북유럽의 복지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글쓰기를 계속하려 합니다. 새봄에도 늘 건강하시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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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215111250&section=03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
 
<2> 땀뻬레 시내버스에서 만난 핀란드 복지국가
 
뒤늦게 핀란드로 유학을 떠난 이유
나는 지금 핀란드 땀뻬레(Tampere) 대학교에서 핀란드와 북유럽 국가의 의회, 민주주의, 시민 참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유학 오기 전에는 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주로 인권 침해 분야의 조사구제 활동과 인권정책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정신장애인, 이주노동자, 복지시설 생활인, 학생운동선수 인권 보호 등에 특히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차별받고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영화 '도가니'가 보여주듯,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현실이 가능한가에 대해 자주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2001년 법률에 의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뒤 많은 제도 개선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있었지만, 현장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실제적 삶의 현실이 개선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인권의 참다운 실현을 위한 조건과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안게 되었고, 민주주의, 인권과 시민권, 복지국가의 연관 고리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북유럽 국가로의 유학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다.

나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절실히 요청될 것이라고 여겼고, 그 적극적 실천 모델의 하나로서 북유럽 사회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몸으로 부딪쳐 살아보기를 원했다.

그렇게 2009년 말 인권위를 그만두고, 2년 남짓한 모색과 준비 끝에 땀뻬레 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받아 핀란드 유학길에 올랐다.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의 손을 잡고 헬싱키 공항에 내린 때는 2011년 12월의 어느 오후였다. 오후 세시도 되기 전에 도시는 어두워졌고, 거리엔 눈이 한 길 높이로 쌓여 있었다. 핀란드의 첫인상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춥고 긴 겨울 풍경이었다.

▲ 핀란드 땀뻬레 시청 앞 광장의 겨울 풍경 ⓒ서현수


그러나 견고하게 설계되고 건축된 건물들 내부는 아주 따뜻하게 난방이 들어와 위안이 됐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도 길을 나서 걸어가는 동안은 제대로 춥지만 일단 버스를 타거나 건물 안으로만 들어가면 금세 따뜻한 기운에 몸이 녹았다.


시내버스에서 만나는 복지국가

버스는 인구 22만 명의 핀란드 내륙의 대표적 산업도시 땀뻬레의 주 대중교통 수단이다. 이곳의 버스는 거의 항상 제시간에, 아마도 칸트보다도 더 정확하게, 도착하고 출발했다. 그리고 역시 예상했던 대로 버스에는 유모차가 많았다. 버스의 한가운데에는 널찍한 공간이 편리하게 설계돼 있어서 유모차 두 대가 동시에 승차할 수 있다. 어떤 날은 유모차 세 대가 함께 타고 가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신속한 승하차를 재촉하는 버스 기사도 없고, 시간이 지연되거나 공간이 비좁다고 불평하는 승객도 없다. 게다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승차하는 경우는 어른도 버스비가 무료이니 번거롭게 카드를 찍을 필요도 없다. 자연히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외출과 행동반경이 자유롭고, 버스 이용도 장려되는 셈이다.

비단 유모차만이 아니다. 신체 장애인과 이동 보조기구를 가진 노인들도 땀뻬레 시내버스의 교통 편의시설서비스의 주 이용자들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카트기에 몸을 의지한 노인, 그리고 유모차가 공존하는 버스 안의 풍경을 보면서 이곳이 복지국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 땀뻬레 시청 광장 앞의 버스 정류장 풍경 ⓒ서현수

버스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버스에 오르면 늘 많은 수의 노인들을 만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많은 노인들의 옷차림새와 표정, 그들 사이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복지국가가 사람들을 얼마나 평등하게, 그리고 존엄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곳에도 부자가난한 이가 있지만 그 격차가 우리처럼 크지 않고, 인구의 대다수는 중간 지대에서 비교적 평등하게 생(生)을 영위하는 듯싶었다.

또 특이한 것은 낮 시간대의 버스에 어린이들도 많이 탄다는 것이다. 수업의 일환으로 시내에 외출을 나온 학생들이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들까지 정기적으로 그룹을 지어 박물관으로, 연극 공연장으로, 도서관으로, 수영장으로, 호숫가와 숲 속 공원으로 외출을 나오는데, 이들이 시내버스의 또 다른 중요한 이용자들이다.

대단할 것 없는 소박한 일상의 도시 풍경이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사회 공동체의 한 주체이자 동등한 참여자임을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나아가, 교육이 지역사회와 별개로 구획된 자신들만의 담장 안에서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다. 안전교육 환경, 보편적 교육 복지, 창의적인 교육 방식과 높은 학습 성취도를 자랑하는 핀란드 교육 시스템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또 하나의 대목이다.

실제로 내가 거주하고 있는 깔레바(Kaleva) 지역의 일부 고등학교들은 아예 지역 도서관, 시민대학과 함께 건물을 공유하기도 한다. 즉, 고등학교이면서 지역 공공도서관이고, 또 성인들을 위한 제2의 직업교육과 시민교육이 이루어지는 평생학습기관이기도 한 것이다. 자연히 남녀노소, 거의 모든 인구계층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엇갈리는 공공장소가 된다.


▲ 깔레바의 땀메르꼬스끼 고등학교(Tammerkosken Lukio). 쌈뽀 도서관(Sampolar Kirjasto)과 노동자 시민대학(Työväenopisto)이 함께 들어서 있다. ⓒ서현수

재단과 기업을 운영하는 학생회와 대학생 복지

핀란드에 도착한 뒤 우리는 땀뻬레의 대학 연합 학생회(TAMY)가 운영하는 학생주거재단(TOAS)에 신청해 학교 근처의 아파트를 하나 얻어 살고 있다. 학생회가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니 언뜻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959년 설립된 이 재단은 2011년 기준 67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저렴하고 안정된 주거 공간 등 '학생 친화적'(student-friendly)인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학생회는 'Juvennes Corporation'이라는 별도 기업 법인을 설립해 이 지역 대학들의 레스토랑과 카페 등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역시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의 음식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데, 석사 과정 이하의 학생들은 약 2.7유로(EURO)의 싼 가격에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이처럼 핀란드에서 학생회는 노동조합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중요한 행위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 이사회에는 교수, 직원 대표와 더불어 동등한 숫자의 학생 대표가 선출돼 학교의 정책, 예산, 운영 전반에 관여한다. 또, 정부의 대학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 집단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무튼 학생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이곳 대학생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함께 동거하는 학생들이 참 많았다. 기본적으로 몸(body)과 성(sex)에 대해 무척 개방적인 이 사회의 문화와 연관될 테지만, 더 현실적으로는 재정적 측면의 이유가 작용하는 듯했다.

핀란드의 대학생들은 학비가 없을뿐더러 한 달에 약 300유로의 보조금(Guarantee)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또 정부 보조금에 상응하는 액수를 장기 저리에 졸업 후 갚는 조건으로 정부가 대출해준다. 게다가 교통비, 학교식당, 공연 관람과 각종 입장료에서 학생은 거의 반값 할인을 받는다. 자연히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독립된 생활이 가능하다.

나아가,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 매월 4~500유로가 넘는 부모 수당(Parental allowance)과 각종 아동 용품이 정부로부터 3년간 지원된다. 또 만 17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는 매달 100유로 이상의 아동 수당(Child benefit)도 아이의 수만큼 지원된다. 여기에 범죄가 거의 없는 안전한 사회 환경, 어린이집부터 대학까지 이루어지는 무상교육, 출산과 예방접종 등 무상에 가까운 의료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출산과 양육의 부담이 현저히 낮다.


경계 넘기의 어려움, 복지국가의 안과 밖

다만, 이런 보편적 복지국가의 사회보장과 서비스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민자와 EU 바깥의 외국인(유학생 포함)에 대한 진입 문턱은 상당히 높고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 가족도 몇 번이나 이런 문턱을 경험해야 했다.

핀란드의 각종 사회보장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정부 사무소를 '껠라'(Kela)라고 한다. 부모 수당, 아동 수당, 학생 보조금, 실업 수당, 장애 수당, 주거 수당, 퇴직 연금 등의 수급 자격 심사와 지급 결정이 모두 이 사무소에서 이루어진다. '껠라' 사무소를 가보면 10여 개의 상담 부스 앞 벤치에 번호표를 쥔 사람들이 각종 서류를 들고 대기하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시민들의 삶을 보살피는 사회복지의 핵심 기관이지만 이용자로서는 얼마간의 관료적 절차를 감내해야 한다. 신청서를 접수한 뒤 결정을 받기까지는 통상 여러 주의 시간이 소요되며, 추가 증빙을 요구받는 경우에는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방문하기를 싫어하는 기관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 '껠라' 자격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자격을 얻으려면 2년 이상에 해당하는 고용 계약서나 이에 상응하는 장학금 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여기 처음 오면서 나는 땀뻬레 대학교의 입학 허가만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박사과정 대상의 장학금을 최대 1년까지만 제공하고 매년 다시 선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장기간의 외부 장학금을 받지 않는 한 이 요건을 갖추기가 불가능했다.

다행히 나의 경우는 지도교수가 핀란드 학술원(Academy of Finland)에 제출한 연구 프로젝트가 선정되면서 2012년 9월부터 4년간 연구원으로 고용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와 우리 가족의 '껠라' 서비스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정확한 규정을 모른 채 두 차례 신청서를 접수했다가 기각 통보를 받은 뒤였다.

이때부터 우리 가족도 이곳의 공공 의료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우리 아이에 대한 아동 수당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매년 시 경찰청의 이민사무소에 가서 비싼 수수료를 물고 수개월을 기다려 갱신해야 하는 거주 허가(Residence Permit)도 고용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까지의 장기 거주 허가로 발급받았다. 마치 '난민(Refugee)에서 시민(Citizen)으로' 옮겨가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나의 아내는 산업고용사무소에 구직자로 등록하고 고용 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담당 직원과 두 차례의 상담을 거쳐 개인 통합 계획(Individual Integration Plan)을 설계했다. 그 뒤 이민자 직업 훈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풀타임 핀란드 어학 코스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매월 수백 유로의 노동시장 보조금(Labour market subsidy)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나 더 특기할 것은, 이러한 사회보장의 토대에 높은 조세율과 투명한 징세 시스템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고용계약서를 체결한 뒤 첫 월급을 받기 전에 반드시 개인이 직접 세무서를 들러 계약 내용과 연소득을 신고하고, 이에 근거한 개인 세율과 세액이 기재된 세금 카드(Tax Card)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훨씬 높은 세금이 추징된다. 세무서를 다녀오면서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부조와 사회보험, 보편적 사회서비스의 재원이 어디서, 어떻게 마련되며, 다시 어떻게 시민들에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핀란드 복지국가의 도전과 함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의료, 교육, 주거, 고용, 육아 등 삶의 제반 영역을 포괄하는 핀란드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나도 조금씩 감을 잡게 되었다. 어쩌면 높은 사회보장과 보편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그러한 사회적 권리(social rights)의 자격 요건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최근에는 시장 환경과 사회구조의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자녀육아 수당이나 대학 교육의 재정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집권 보수당(NCP)의 주장이 사회적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의 관용적인 이민과 난민 정책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면서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재정 지원에도 반대하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 '핀란드 사람들'(The Finns Party)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이민자와 외국인에게 여전히 배타적인 제도적 시스템과 문화적 폐쇄성을 비판하는 공론장의 목소리도 계속 들려온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통찰해 볼 때, 1990년대 초반 소련 몰락 이후 심각했던 경제위기의 기억과 최근 유럽연합 국가들의 재정 위기의 현실을 모두 직시하고 있는 핀란드 사회는 복지국가 시스템과 정부 재정의 건전성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에 따른 경제 침체 국면과 핀란드의 대표 기업인 노키아의 고전 속에서 핀란드도 실업이 증가하는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실업 문제가 사회통합을 위협할 만한 상태로 발전되지 않고 안정적인 복지 서비스와 고용 지원 정책을 통해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다. 또,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재정 지원으로 최근 정부 재정이 적자로 전환되었음에도 유로존(Eurozone) 국가 중 가장 높은 AAA 신용등급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 속에 핀란드 모델의 강점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IMF 외환위기' 등 신자유주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오히려 더욱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와 집단적 불안, 그리고 사회통합의 위기를 겪어 왔다. 최근 경제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여야를 넘어 공통된 정치적 노선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선거철 득표를 위한 임시방편의 정치적 수사에 결코 그쳐서는 안 될 절박한 사회적 요구가 그 안에 놓여 있을 터이다.

북유럽의 변방에서 식민지와 내전, 전쟁의 고난을 딛고 20세기 후반 복지국가의 건설과 혁신적 지식경제 모델로의 전환에 성공한 핀란드 사회의 경로가 우리에게도 좋은 참고 좌표가 되기를 바란다.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18대 대선 소감 2 - 성찰, 혁신, 실천!

5.
 
이번에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뒤 몇 일간 칩거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5년의 전망과 이른바 민주진보 정치세력의 과제는 무엇일까 하구요. 정리된 몇 가지 생각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박근혜 정부가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예단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꾸로 몇 가지 주요 정책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가령, 남북관계에 있어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는 파격적 조치가 나올 수도 있고, 재벌 개혁이나 경제민주화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전부터 김종인씨가 강조했듯이, 박근혜 당선인이 독일의 메르켈 수상을 모델로 삼아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와 야당에 대한 유화적 스탠스를 토대로 개혁적 보수 정책을 펼치는 경우라 할 것입니다.
 
, 이명박 정부의 실패로 거론되는 정책들을 일정한 수준에서 개선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겠지요. 인사정책이나 4대강 사업, 그리고 언론, 검찰 개혁 등이 해당될 수 있겠습니다. 이 경우 김영삼 정부 초기와 같은 개혁 국면이 조성되면서 상당한 지지와 인기를 구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박근혜 정부의 초기 정책이나 인사가 행해진다면 큰 대비 효과를 누릴 것입니다.
 
둘째, 이러한 가정 하에서 민주진보진영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반대 투쟁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이와같은 개혁 정책을 취할 경우 민주당은 이를 적극 인정해주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제안을 하고, 가능한 최대한의 수준에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물리적 힘의 대결 논리가 아니라 이것이면서 저것이다’, 상대의 에너지 흐름을 타고 차원을 넘어가는 접근입니다. 이를 통해 복지국가와 경제민주주의,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정초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전후 독일(서독)의 경제적 재건과 민주적 성공을 이끈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은 사실 독일 사민당이 아니라 아데나워 총리가 이끈 기민당 집권기(1949~1963)에 첫 단추가 꿰어졌고, 이후 사민당 집권기에 더욱 공고해졌다는 역사적 사례를 떠올려 볼 수 있겠지요.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또 어떤가요? 사민당이 보수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시작한 사업이 극적인 냉전 해체의 국제정세를 타고 결국 기민당의 헬무트 콜이 이끌던 시기에 독일 통일로 결실을 맺지 않았습니까?
 
복지국가의 건설이나 남북의 평화 통일과 같은 사안은 특정 정치 세력의 헌신적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물론 진보세력의 헌신은 필수적입니다), 지금은 사회적 합의의 토대를 건설하고 그 합의의 프런트 라인을 한 발짝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임을 유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셋째, 그러나 과연 이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하는 개혁적 보수 정부의 길로 나아갈까요? 민주진보진영은 협소한 네거티브적 접근법의 관성과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여당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제와 대국적 협상에 임하는, 높은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서는 이 또한 결론을 예단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대로 권위주의적 불통정부가 연장되는 것에 불과하고, 집권자의 의지 부족이나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시늉만 내는 개혁이거나 오히려 개악되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 민주당부터 진보정당들까지 개혁 실패에 대한 비판에 주력하다가 일정한 시점에서 중대한 정부 실패가 빚어지거나 사회적 저항이 확대되는 시점에 이르면 전면적인 반대 투쟁에 나서고, 결국 선거 때가 다가오면 별다른 정책적 준비와 실행 과정 없이 적당한 후보를 찾아 다시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오는 수순도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국제정세, 그리고 국내 시민사회의 갈등구조와 역학에 따라 부침하게 될 다양한 상황도 세밀하게 고려해야 할 변수가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주와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의 새로운 현실 인식과 대담한 자기 혁신, 그리고 이를 통한 한국 정치의 질적 전환의 가능성입니다. 박근혜 후보가 TV 토론에서 그래서 대통령이 되려고 하잖아요!”라는 말을 반복하자 네티즌들은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대통령이 돼서 하고 싶은 일을 지금부터 하면 된다고 말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상을 찾아내 이를 반박한 일이 있었지요. 저는 지금 이 말을 멘붕에 빠져 허우적대는 민주진보진영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민주당이든 새로운 국민정당이든, 자신들이 집권하면 하려 하는 일들을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지국가 건설이든, 경제민주화 실현이든, 남북한의 평화 통일이든, 새정치 실현이든, 또 다른 그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리고 5년간 입법과 정책, 현장의 실천과 운동, 국제적 협력과 시민사회 소통 등 모든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와 성과를 일구어내야 합니다. 때로는 정부에 협력하여, 때로는 정부를 비판하면서, 때로는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면서 말입니다. 제발 민주당이, 안철수 캠프가, 진보정당들이 정신을 차리고 아프게 교훈을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6.
 
지난 5년의 경험과 이번 대선 결과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 역동적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 같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를 이룬 동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이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헝가리에서 최근 보수주의 정당이 집권한 뒤 합법적 절차를 통해 헌법과 각종 기본적 법률과 제도를 자신들에게 영속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개악함으로써 권위주의로의 퇴행을 가져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사례가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큰 것 같습니다.
 
새삼 민주주의란 결코 고정된 상()일 수 없으며, 일순간에 만들어지거나 도달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끊임없는 시민적 성찰과 학습, 그리고 제도적-비제도적 실천을 통해 함께 기르고 가꾸어가야 할 무엇이겠지요.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선거 이후 벌써 4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우울한 소식 들었습니다. 이미 우리사회는 매일 42.6, 매년 약 15,000명이 자살하는 등 OECD 최고의 자살률을 몇 년째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일상이 마치 무슨 내전을 치루는 나라처럼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 위기감과 절박감을 던져주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 채 어떤 정부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어떤 정치세력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고 싶다면 선거 승리의 도취에서 빨리 벗어나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개혁적 보수 정부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초기의 인수위와 내각, 청와대 인사는 그 방향을 가늠해볼 시금석이 될 겁니다. (빨리 윤창중 수석대변인 임명 철회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정치세력들이야말로 치열한 성찰과 혁신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입으로만 성찰과 혁신을 외지 말고 실질적인 변화의 노력과 가시적인 결과물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추상적 언명과 다짐은 이미 많은 시민들에게 식상하고 공허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뼈저린 각성이 없다면 내일의 기약도 어려울 것입니다.
 
대선 패배 이후 당권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여있는 민주당에 말씀 드립니다.
 
당신들이 할 일은 노동자들의 자살 행렬에 대해 무한 책임을 느낀다고 형식적인 조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입법, 정책, 정치적 실천의 영역에서 책임있는 행동을 다 하는 것이오!”
 

18대 대선 소감 1 - '힐링'에서 '성찰'로!

대선이 끝났습니다. ‘멘붕겪으신 분들 많을 텐데, ‘힐링은 다 되셨나요? 역사를 길게 보면 한 번의 선거라는 것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지난 5년의 세월이 워낙 재앙이었던 데다 박근혜 후보 뒤에 어른거리는 유신독재의 이미지가 겹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한 많은 시민들에게 이번 선거는 절박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울과 낙담을 털고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역사는 비틀거리면서 전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외부에서 원인을 구하지 말고, 남 탓부터 하고 보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고, 더 밝아진 눈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핀란드에서 바라본 한국의 18대 대선,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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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 알려진 내용이지만 기록의 차원에서 일단 팩트부터 정리해봅니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다. 20121219,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75.8%로 최근 세 번의 대선 가운데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선거는 아주 치열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문재인 후보가 48%의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박근혜 후보는 51.6%의 지지를 얻는 박빙의 승부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세대별 투표 성향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두드러졌다.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는 문재인 후보를 더 선호했고, 50대 이상의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를 더 선호했다. 특히, 인구 고령화에 따라 40대 이상의 유권자가 증가 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90%에 가까운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한 50대가 박근혜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 점이 박후보의 당선에 가장 기여한 중심 요인으로 분석됐다. 지역 변수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서울과 호남에서 선전했지만 박근혜 후보는 인구가 많은 영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강원, 제주, 충청권에서 이기고 인천과 경기에서마저 우세한 득표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후보는 서울에서 박근혜 후보를 단지 근소한 차이로 이겼고, 야당의 강세가 예측되던 경기, 인천에서마저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서 다른 지역의 열세를 만회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
 
많은 질문과 고뇌를 안겨준 이번 대선,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외신들이 전하는 대로, ‘독재자의 딸이 민주적 절차(선거)를 통해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 역사적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개 정치학자들은 그것도 민주주의다”, 나아가 그것이 민주주의다라고 말할 텐데, 이번 선거 결과에 비판적인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는 차마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지난 5년간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파탄에 가까운 실패가 널리 인정되고,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에 대한 대중의 높은 열망이 거듭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총선에 이어 야당이 또 다시 무기력한 모습으로 패배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실망과 우울을 겪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물론 48%, 1469만표의 지지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에 너무 낙담만할 결과는 아닐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오히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가 채택해온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 의회 선거가 강요하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의 정치구조로 인해 이러한 민의가 정치적 대표 체계 속에 균형있게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이 상기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모델로 삼아온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훨씬 합의 지향적 민주주의(consensual democracy)를 운영하고 있는 유럽의 다수 국가들처럼, 이제 우리 사회도 비례대표제도의 전면 도입에 기초한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을 포함해 개헌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선거라는 것은 언제나 돌발적 변수와 예측불가능한 요소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특정한 요소나 오류에서 사태의 근본 원인을 찾는 행태는 나약한 심성의 인간이 사후약방문을 찾는 격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요. 예컨대, 50대의 높은 투표율과 이들 다수의 박근혜 지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풍부한 정책과 관점을 마련하고 이를 호소력있게 재구성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겠지요. , 이정희 후보의 막말과 토론 태도 자체가 50대의 이반을 불러왔다기보다는 - 물론 그도 큰 원인을 제공했겠지만- 이를 적절히 제어하고 또 훌쩍 뛰어넘는 토론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문재인 후보의 한계가 더 문제였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3.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면,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모두 토론과 연설 능력에서 현 단계 한국 사회가 요청하는 민주적 정치지도자의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한국 현대사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운명의 크기 앞에 성실했던 그의 인생역정과 훌륭한 인간적 성품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치열하지 않더군요. 힘없는 시민들이 겪는 고통과 좌절에 대해, 지난 정부의 실정에 대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길과 이제 새롭게 열어갈 정치적 비전에 대해 그가 말할 때 더 정밀하면서도 명쾌하게, 갈구하는 시민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처음 기대했던 것에 비해 막상 정치적 공론장에 나타난 그의 태도나 언어가 너무 유아적인 듯해서 놀라고 실망했습니다. 그가 내놓은 새 정치의 구상이나 이른바 새로운 형식의 유세라며 진행하던 모습에서도 문제의 실질에 가 닿은 내용이나 메시지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강조해온 것처럼 공감과 소통 능력은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아주 중요한 미덕이자 기술이지만 무엇을, , 그리고 어떻게 실천하고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과 설득 없이 동화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것에 참 의아하더군요.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행태도 아름답지 못한 것이었지만, 안 후보는 결국 자기 한계, 곧 정치 세계에 대한 미숙한 사고와 내용적 준비 부족으로 인해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야권 후보의 정치적 미숙함은 단지 후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당 체제의 허약함과 직결된 문제일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민주당을 잘 살펴보면, 분명한 정강정책을 가지고 공유된 정치적 이상을 위해 정치활동을 벌이는 현대적 대중정당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정치적 야망을 꿈꾸는 개인 명망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의 정치적 이상이나 정책 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활동의 구심으로서 정당 조직의 발전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부르주아 정당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너무 박한가요? 부디 그런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 가운데 누구라도 앞으로 대권 도전을 포기하고 10, 20년 뒤 민주당을 완전히 시민사회 속에 뿌리내린 새로운 정치조직으로 만들 포부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요? 미안한 말이지만, 1219일 저녁 민주당사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주요 인사들의 면면 속에서 저는 그러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안철수 후보와 그 캠프 또한 모호한 새 정치담론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대중의 정치 불신과 혐오 정서에 편승해 반()정치적 수사와 급진적 대중주의(radical populism)에 가까운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또 다른 한계에 직면했다고 보입니다. 만약 안철수씨가 암중모색 뒤에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한다면 의회와 정당 정치, 민주적 국가운영 등에 대해 명료한 자기인식과 질적으로 달라진 비전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일부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이정희 후보의 언변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기준에서 본다면 그녀 역시 결코 토론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성찰이 결여된 그녀의 재빠른 말들과 (그가 누구이든)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선적 태도는 80년대 운동의 패러다임에 갇혀 어느덧 몰락해가는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을 고스란히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토론 역량에 대해서는 굳이 장황한 평가가 불필요할 듯 합니다. 다만,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 미달에 가까운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은 15년 이상의 정치적 여정 속에서 정제된 측면이 있고, 그녀의 지지자들에게는 충분한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한심한 토론 룰과 주류 언론의 불공정한 보도 덕을 많이 보았지만요.)
 
4.
 
사실 우리 사회는 뛰어난 연설과 토론 역량을 단지 화려한 정치적 언변과 수사로 착각하거나 일종의 위선적 포장 정도로 여겨 등한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는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관행적 인식을 이제 분명하게 재고했으면 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강조했듯, 인간의 공적 인격은 말과 행위로 드러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더 명확하고 사려깊으며 일관성있는 사유와 언어 행위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 예외적 사례일지 모르지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가 하나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요? 물론 미국을 포함해 서구의 현대 민주주의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정치인들이, 나아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꾸준히 갈고 닦아야할 민주주의의 기술(arts of democracy)을 우리는 쉽게 건너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될 때가 많습니다.
 
화려한 수사와 치열한 논쟁을 즐기는 미국과 정치문화가 많이 다르지만, 이곳 핀란드에서도 인상깊은 것 중 하나는 유명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남녀노소의 일반 시민들, 심지어 아주 어린이들까지 가령 TV 화면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한다는 점입니다. 잘 확립된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시민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린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전통과 토론 문화, 평등한 사회의 질, 국가 권력과 언론과 시민의 수평적 관계 등이 그 배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득권을 점하고 있는 상대의 문제점이나 선거 과정의 돌발 변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우리 자신의 태도와 준비된 역량입니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나 선거가 끝난 뒤에나 여전히 더 핵심적이고 중요한 차원에는 진지한 관심과 노력을 쏟지 않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새삼 친노반노로 갈려 대선 패배 책임의 공방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이 여실히 이쪽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식이라면 3년 뒤, 5년 뒤에도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어 더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